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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 – 짠순이 생일

201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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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순이 생일

 

그린이 열여섯 살 생일을 맞았다. ‘Sweet Sixteen’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여자아이들에게 있어서

의 16살 생일은 특별하다. 요즈음은 잘 쓰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이팔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열여섯 살이 갖는 의미는 남다른 모양이다.

나와 아내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일파티도 제법 화려하게 해주어야하고,선물도

오달지게 바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린은 이미 1년 전부터 생일얘기가 나올라치면‘돈퍼~어~겟, 마

이 씩스틴버스데이!’ 하며 윙크를 했다. 예전 생일과는 달라야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그린의 생일이 든 9월이 되었다. 교회 가는 차안에서 슬쩍 물었다.

“그린아, 너 생일파티 어디서하고 싶니? 치즈케이크하우스? 디즈니랜드?” 그런데 그린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노우!” 했다.

“그럼, 집에서 하고 싶니?” 했더니 생긋 웃으며 “예스!” 한다. 뜻밖이었다.

“그래? 네 친구 브리아나는 디즈니랜드에서 했잖아, 그런데 너는 친구들을 집으로 부른단 말이야? 조그

만 우리 집에 친구들을 불러서 어떻게 파티를 하니?”

“아빠, 우리 집에서 무슨 파티를 하겠어, 그냥 식구들끼리 먹는 거지.”

“식구들만? 그럼 네 친구들은 어떻게 하고?”

“괜찮아, 그냥 선물만 받을 거야.”

“뭐, 선물만 받아? 아니 생일 맞은 사람이 파티도 안하고 선물만 받아? 그래도 돼?”

“예스, 벌써 친구들한테 그렇게 말했어.”

“오 마이 갓, 너 참 희한한 아이다, 그래도 친구들이 좋다고 하니?”

“야아, 내 친구들은 돈케어야, 파티는 옵션이야.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하는 거야.”

“친구들에게 선물은 받아야 하고?”

“예스, 업코올스!”

그린의 이상한 논리에 기가 막혀 눈만 껌뻑이다가 선물은 받아야한다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너 아빠엄마에게서는 무슨 선물을 원하니?” 그 말에 그린이 오, 예에, 굿 퀫숀! 하며 두 팔을 흔들어 올렸다.

“음, 하나는 선글라스, 또 하나는 턴테이블이야.” 그린이 원하는 것은 아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기에 별 충격이 없었다. 그게 다는 아니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더니 “유 노, 머니, 플러스 머니.” 하며

엄지와 검지로 돈 세는 모양을 만들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네 서랍장도 하나 더 필요하다며? 용돈 대신 서랍장 사줄게.” 내 말에 그린이 펄쩍뛰었다.

“노, 서랍장은 선물이 아니야, 그건 원래 페런트가 사주는 거야. 돈은 줘야 돼. 아빠, 알지, 씩스틴버스데이!”

그린은 어릴적부터 돈에 대해서 유별나게 관심이 많았다. 돌날 상위에 펼쳐놓은 연필, 돈, 실뭉치 중에

서 유독 1불짜리 지폐만 세 번이나 움켜쥔 아이다. 그래서인지 제 엄마와 지출에 관한 이야기를 할라치

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돈 쓰지 말라고 성화를 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생활용품도 사지 말라

고 한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지출에 관해 의논할라치면 그린이 모르게 살며시 한다.

대학전공도 한 동안은 의사를 지망하더니 언제부턴가 간호사로 바뀌었다. 이유는, 의사가 되려면 30살

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도 빨리 벌고 라이프도 즐기려

면 25세 이전에 학교공부는 마쳐야 한단다. 물론 A와 B+ 사이를 맴도는 지금의 학점유지도 힘이 부치는

데 어떻게 의사되기를 바랄까 하는 속내를 감추고 그렇게 이유를 달았다.

아내와 나는 그린의 주장에 한 번도 않되! 라고 하지 않았다. 9학년 때는 수의사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

는 “오, 그래 네가 에니멀닥터하면 우리가 강아지 똥도 치워주고 사무실 청소도 해줄게.” 하며 환영했

고, 얼마쯤 지나서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여서 “그래,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병든 지구를 살리는 일이

야, 아빤 찬성이다.”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사람 병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하기에“아픈 사람 고쳐주

는 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지. 가난한 나라로 의료선교도 떠나고. 오케이, 닥터 리.”하고 부추겼다. 의사가

되면 비상근무도 해야 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며 간호사로 바꾸겠다고 했을 때도 “오케이, 아픈 사

람을 진짜 돌보는 일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야. 예스, 그렇게 해.”라며 등을 쓸어주었다.

이렇게 무엇이든 잘했어, 오케이, 하며 키워서인지 그린은 자기중심적 짠순이가 되었다. 그래도 하나밖

에 없는 딸이라 어쩔 수없이 스펙트럼의 치즈케잌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이고, 그린이 좋아하는 고구마케

이크를 사들고 들어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헤피, 식스틴버스데이.

 

이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