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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2023.11.30

상세 본문

스바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로 시작하는 노래는 따라 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을 만든 김진호 목사님이 작곡한 이 복음성가는
우리에게 스바냐서를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손자의 손자(현손) 입니다.
자신이 왕족임을 밝힌 선지자 스바냐는 하박국과 동시대 사람으로
강력한 앗수르가 무너지고 바벨론이 급부상하는 시대에
썩을 대로 썩은 남)유다 예루살렘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유다는 북)이스라엘 보다는 비교적 선한 왕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의 죄악도 북과 비교하며 뒤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은 예루살렘에 거한다는 자부심만 남아
더욱 교만해 졌을 뿐 아니라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한복음 4:20)
우상숭배와 정치, 종교적 타락으로 멸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스바냐의 끊임없는 외침에도 결국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그 땅에는 포도밭과 논밭을 지키는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

성경에는 ‘남은 자'(Ramnent)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사야에도 등장하는 ‘남은 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는
다락방 류광수 이단으로 오히려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스바냐서의 남은 자는 자발적으로 ‘제가 남아 지키겠습니다!’ 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식인만 골라 포로로 끌고가는(다니엘과 세친구)
바벨론 사람들에게서 조차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의 침략전에 그들은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무시받고 괄시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사회를 이끌어갈 나라의 지도자가 없는 땅에서
바벨론 사람들을 위한 포도를 재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오히려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
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스바냐 3:12)

곤고하고(가난하고) 가난한(비천하고 초라한) 백성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남겨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을 위해 남겨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을 의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다의 고위관료 처럼, 종교지도자들처럼
악행과 거짓을 행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귄력을 허락하고 특권을 받은 자들의
악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셨고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회초리를 들어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겨진 자들과 다시 시작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한 계획과 꿈을 말씀하시며 이러한 광경을 꿈꾸셨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강한용사)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유쾌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긁어주다)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비명을 지르다)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맴맴돌다)

점잖게 번역된 우리말 성경의 원래 의미를 실제로 구현한다면 충격적인 광경입니다.
강한 용사, 쓰리스타 장군인 아버지가 자녀를 바라보며 근엄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쾌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광경,
자녀의 등을 긁어주며 너무 즐거워 같이 비명을 지르고
함께 손을 잡고 뱅글 뱅글 도는 어느 가정의 모습

이것이 멸망한 유다땅을 다시 세우시고
백성들과 누리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해 드릴 이 세상의 남은 자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스바냐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