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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돕는 베필

2022.08.05

상세 본문

하나님께서 처음 말씀하신 ‘좋지 못하다’는 상태는
아담이 혼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독은 즐긴다고 하고 외로움은 쓸쓸하다고 합니다.
사람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서의 좋지 못하다는 앞서 계속 등장했던
‘좋다’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선하고 아름다운,기쁜 상태’로 있기 원하셨습니다.
교회는 본래 선하고 아름답고 기쁜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공동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담에게 동물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짓다보니 다 암수 한쌍씩이었고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학자들은 이 과정을 아담이 통과한 자각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아담이 자기에게 알맞는 짝이 없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사역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후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의 갈비뼈를 취한신 후 살로 대신 채우셨다는 뜻은
실제로 외과 수술 후 개복되었던 상태를 꿰매듯이 ‘열린 것을 닫다’ 입니다.
이 구절로 아담이 잠들었다는 상태를 수면마취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아담이 잠에서(마취) 깨었을 때 그의 상태를 묻고자
다가오시는 하나님 곁에는 그 전에 아담이 볼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이끌어 오신 장면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랑에게로 함께 걸어오는 수줍은 신부의 모습 같습니다.
이것이 현대 결혼식에서 표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This is my bone of my bones, flesh of my flesh
유명한 이 고백은 후에 성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최상급 비교구문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왕의 왕! 주의 주!(Lord of lords)

뼈는 셀수 있는 계수명사(係數名詞 – countable)로
본래 뼈들 중의 뼈(갈비뼈)라고 표기해야 하나
운율상 뼈중의 뼈, 살중의 살로 표기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최고중의 최고라는 찬사인 것은 맞습니다.
본래 여자는 남자와 하나였습니다.
범죄 이후 둘은 서로를 원하면서도 하나되기 힘든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기 2:24)

인류 최초의 주례사는 부모를 떠나라 였습니다.
아담에게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아담의 부모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누가복음 32:38)

즉,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을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직 범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데
무슨 말씀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물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이 직접 짓도록 동물이 아담의 앞을 지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이후의 모든 삶을 다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짝을 만날 수 있도록 도우신 후
그 다음은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 가도록 하십니다.

부부 싸움에 하나님이 내 편을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찌보면 내 몸에서 나간 뼈를 다시 내 몸안으로 마취 없이 넣는 작업 같습니다.
아프고 상처나고 찢겨져 나갑니다.
그러나 본래 내것, 나 였습니다.
그 과정은 나와 배우자가 함께 해 나가야 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은 나 몰라라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 하나가 되도록 스스로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었습니다.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