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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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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여인은 갈릴리 서쪽 위 지중해 연안에 있는 두로와 시돈 지방의 여인입니다.
그 지역은 시리아 페니키아로 불리던 곳이었으며 한글 성경에서 수로보니게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가나안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수로보니게, 마태복음에서는 가나안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두로와 시돈 지역은 항구도시 답게 부유한 삶을 누렸고, 헬라문화가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시리아 페니키아의 귀족 부인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큰 아픔이 있었으니 딸이 귀신 들려 고통 당하고 있었습니다.
헬라 문화가 가득했던 당시 도시는 어디에나 신들(gods)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그 신은 하나님(God)이 아니었습니다.
귀족 부인의 딸이 귀신 들린 것이 어찌 보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여인은 갈릴리 시골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수를 찾아가기에 이르렀고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부모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릎 꿇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토록 부르짖고 기도했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묵묵 부답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계속 간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개다”

나는 자녀들의 빵을 개에게 주지 않는다.

당시 식사 전 손을 닦는 빵이 있었고 더러워진 빵은 개들이 먹도록 식탁아래로 던져 주었습니다.

개들도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여인의 대답에 놀라셨고 너의 믿음이 크도다 하셨을 때 그녀의 딸은 나았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개에게 주지 않는 다는 말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인)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예수님도 유대인입니다)
(예수께서 가져오신 치유의) 복음은 1차적으로 자녀들(선민백성,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1차적 책임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차 수혜자인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고 자신의 딸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진리 앞에 그녀는 기꺼이 개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식탁에 떨어진 손 닦아 새까매진 빵이라도 주신다면 제 딸은 나을 수 있습니다.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놀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없는 믿음이 이방인에게는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녀의 딸은 나음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예배와 기도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한 기도와 믿음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