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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십일조는 찬양입니다

2022.08.26

상세 본문

창세기 14장

아브람은 용사 318명을 이끌고 롯을 구하러 갔습니다.
적은 수로 강대국의 연합군과 맞서 싸우는 엄청난 전투였습니다.
그돌라오멜와 3개국의 연합군은 다른 5나라로 부터
12년이나 조공을 받던 나라였습니다.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전투대대는 이 강대국을 무찔렀고
조카 롯과 그외 모든 부녀자, 약탈물을 되찾아 왔습니다.

승리의 귀환길 아브람의 앞에 나타난 두 왕이 있었는데
하나는 소돔왕이었고 또 하나는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소돔왕이 먼저 아브람에게 인사말을 건넸지만
성경은 그 대화에 불쑥 끼어든 다른 왕과의
대화를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브람 앞에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타난 사람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살렘은 현재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평화를 의미합니다.
멜기세덱은 두 단어의 합성어로 나의 왕은 정의롭다, 공의롭다 입니다.
제떼크는 정확하게 반을 가르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길 빕니다.(창세기 14:19)
멜기세덱의 말은 오늘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를 남발하는
우리의 언어습관을 교정해 줍니다.
하나님은 축복(복을 빌어주다)하는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목회칼럼을 읽으시는 분들을 축복하오니
하나님 모든 독자들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님 하나님을 찬양하라 말했습니다.
아브람은 그 말을 드고 지신의 소득에서 1/10을 드렸습니다.
성경전체를 통틀어 처음 등장하는 십일조였습니다.
십일조의 첫 모습, 첫 십일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십일조는 찬양입니다.
십일조는 의무를 뛰어 넘습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도 복되지만
그것을 넘어 나의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십일조는 향기가 나고 아름답습니다.

멜기세덱과의 대화가 끝나자 소돔왕이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사람은 내게 주고 약탈한 물건은 가져가시오.
아브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맹세하니, 신발끈 하나도 갖지 않겠다.
소돔왕 당신이 다 가져가도 좋다. 단 나와 동맹을 맺은 사람들과
나를 따라 적진에 들어간 나의 용사들(젊은이들)에게는 몫을 주시오.

아브람과 소돔의 대화로 시작한 이 대화가
갑자기 멜기세덱과의 대화가 소개되고
다시 소돔과의 대화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 독특한 구조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멜기세덱이 중간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브람은 아마도 소돔왕과 거리해였을지 모릅니다.
그는 다시 시작된 소돔왕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고
멜기세덱이 했던 찬양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그대로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헌금 생활이 강요나 부담이 아닌
순수한 우리의 신앙고백, 찬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