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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목회 칼럼

오염된 아멘

2022.08.27

상세 본문

창세기 15장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과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약속만 주고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꾸합니다.
당신이 약속만 주고 자녀는 주지 않으니
다메섹 종 엘리에셀을 양자 삼겠습니다.
당시(고대 근동)에는 친 주인의 자녀가 없을 경우
종을 양자 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느려질 때 인간은 자신의 대안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 대안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을 보여주셨습니다.
밤 하늘에 가득한 별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네 자손이 많아지리라
아브람은 이 약속을 믿기로 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창세기 15:6)

믿다 : AMAN
고대 히브리어 아만은 후에 Amen(아멘)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됩니다.
아멘은 I Agree. 믿다. 동의하다 입니다.

교회마다, 신자마다 아멘을 고백합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크게 아멘, 계속 아멘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아닌 잘못된 메시지에도 아멘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아멘은 오염된 아멘입니다.
아멘은 불가능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겠다고 고백하는
결코 쉽지 않은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후에 성경 여러곳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하박국 2:4, 로마서 1:17, 갈라디아서 3:11)
바울은 이 구절을 예로들어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할례를 받은 후가 아니라 받기 전임을 강조했고(로마서 4:3,10)
마틴 루터는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의롭게) 얻는다는 말씀(로마서 1:17)을
깨달은 후 천국의 문 바로 마지막 계단에 선것 같았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는 수행을 위해 종탑까지 무릎으로 참회의 기도를 드리며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아멘을 크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멘을 크게 자주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아멘이든, 내 삶에 찾아온 하나님의 불가능한 약속앞에
진실로 고백할 때 아멘은 아브람의 의롭게 된 아멘이 될 것입니다.
불가능한 약속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