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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나의 예배가 실패하는 이유

2022.08.08

상세 본문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은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됐습니다.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의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에서 난 것을 제물로 가져왔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이일로 분노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화는 결국 동생의 목숨을 앗아가는 인류 최초의 살인,
근친 살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아벨처럼 양을 드리지 않아서라구요.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아벨이 양을 죽였을 때 피를 흘렸을 것이기 때문에
어린양이신 예수의 십자가 보혈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한 두 사람의 제사는
제물을 뜻하는 같은 단어(민하 מִנְחָתֹו)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가인의 제사가 농사를 짓고 드리는 곡물이어서 안된다는 의견도 맞지 않습니다.
레위기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제사법에는
엄연히 곡물 제사(소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여호와께 곡식으로 예물을 가져오려면 고운 가루가 그의 예물이어야 한다.
(레위기 2:!)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하나님은 제물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제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
즉 그 제물을 준비한 사람의 삶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태어난 두 자녀는
에덴 동산이 아닌 추방된 곳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잡으시던 에덴 동산이 아닌 곳에서 그들의 삶은
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라야 했습니다.
결국 예배는 그런 삶의 수고와 고통이 담겨야 하며 삶의 예배는 그래서 더 숭고합니다.

오늘날 화려한 조명과 음향 시설 속에 관람자와 같이 예배를 참여하고
사용료를 내듯 헌금(제물)을 드리는 예배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벗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수고와 노력만큼
인간도 그런 삶의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셨던 아벨과 그의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