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적은 믿음으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회
2025.02.23상세 본문
교회에서 진행중인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편지 설교 시리즈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본문 : 요한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중 6번째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믿음과 말씀으로 인내하여 승리한 교회로 인정 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지금 미국 동부의 필라델피아와 같은 이름입니다.
형제의 사랑이라는 뜻의 이 곳은 고원에 위치한 도시로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상업이 발달하였고 ‘동방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했으나 이 지역은 지진 피해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 승리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표현은 이런 지진의 영향을 반영으로 한 말씀 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작은 아테네'로 불릴만큼 우상 숭배가 심했고 특히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칭찬만 받은 교회였습니다.
이 지역은 이단보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심했습니다. 회당과 교회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유대인의 회당은 사탄의 회당, 집단으로 불렸습니다.
이 교회에 놀라운 특징이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이세벨이라는 거짓 여선지자로 인해 큰 어려움이 겪었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여선지자 암미아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녀로 인해 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었다고 전해져 옵니다.
7. “너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써라. ‘거룩하고 참되신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이사야 22장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22절
내가 또 다윗의 집(유다 왕궁)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히스기야 왕 시절에 셉나라는 자가 가지고 있던 유다 왕궁 열쇠를 궁내 대신 엘리야김에게 주시겠다 하시며
하셨던 말씀으로 열쇠를 가진자가 권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곶간 열쇠와 같은 개념일 수 있습니다.
열쇠 이야기는 요한계시록 1장에 이미 한번 언습되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1장 18절
나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으나 보라, 나는 영원토록 살아 있는 자니 나는 죽음과 음부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
음부는 구약성경에서는 스올, 신약성경에서는 하데스라고 하는 지옥을 말합니다.
지옥의 주인은 사탄이 아닙니다. 지옥의 주인은 마귀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열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열쇠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8-19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런데 지옥의 열쇠를 주시는게 아니라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천국의 열쇠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열쇠로 수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 해야 합니다. 열쇠는 천국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실 능력이 없는 교회 였습니다. 8절에 약하다는 말은 조금 약한 정도를 말하는게 아니라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주 적은 능력, 아주 작은 것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교회를 위해 문을 열어 놓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문은 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열린 문'은 아무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 문을 열어 주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교회가 아무것도 없는 매우 연약한 교회였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deny)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쇠가 필요 없는 '열린 문'은 아무 버틸 힘이 없을 만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은 자들만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그 힘은 예수님에게서만 배울수 있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시험은 연약해 지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강한 상대를 만나 싸워야 하는 불리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 이전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받고 물 위를 올라 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축하 메시지가 울려 퍼졌고 성령이 비둘기 처럼 내려 오셨습니다. 모두가 그 광경을 직접 봤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그 작은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몰았다고 했습니다.
내몰았다는 것은 모시고 간게 아닙니다. 안내한게 아니라 쫓아내 듯 하는 겁니다.
예수는 환호와 박수에 취해 있었습니다. 성령은 그런 그를 아직 박수가 끝나기도 전에 황량한 곳으로
내 쫓듯이 몰아 갔습니다. 예수는 세례후의 영광에 취하여 광야로 안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40일간 철저히 외롭고 배고프며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예수의 시험은 약해지도록 방치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극도로 쇠약해진 그에게, 이제는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마귀가 따끈따끈한 빵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 빵은 사실 돌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때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말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돌과 빵을 구분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갈라지고 메마른 그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 였습니다. 신명기 말씀이었습니다.
마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계속 공격했고 마지막 공격은 높은 곳으로 데려가 천하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절하며(예배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 였습니다. 왕이 되라! 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위해서만 일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잘 지키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지역은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는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자리 외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구성된 교회는 무시당하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속에 연약해져만 가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은 9절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사탄의 집단에 속한 어떤 사람들을 네게 줄 것인데 그들은 자칭 유대 사람들이라고 하나 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쟁이들이다. 보라. 내가 그들로 네 발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할 것이다.
주님은 그 무엇보다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을 기소하고 사형에 처하게 한 모든 내용이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연약해져도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분은 보호하십니다.
10절에 앞으로 닥칠상황이 있을 텐데 너희는 이미 그것을 통과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단이 가장 많이 가져가서 오염시킨 '십사만 사천'입니다. 그 말은 '자기들만 구원받는다'가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지막 날까지 끝까지 지켜주시겠다고 한 약속입니다.
그 표시가 선명하다는 의미로 가장 잘 보이는 이마에 도장을 찍어주겠다. 인치겠다고 한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말은 예수를 부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베리 칩이 666이다 이런 이야기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주님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더디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포지 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그 믿음을 빼앗아 가지 않게 하십시오.
11절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약속과 같습니다.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럴려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즉 끝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사역하다 죽어라 가 아닙니다.
그 끝에는 오히려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연약해 지고 어려워져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다가올 어려움과 시험속에서 승리하는 저와 우리 가족,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빌라델비아 교회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