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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침묵의 13년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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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아브람이 사래의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후 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독자는 16장에서 17장으로 넘어갈 때 단 몇초에 불과하지만
아브람과 그의 가족에게는 1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은 하갈이 출산하고 이스마엘이 신생아, 영아, 유아를 지나
청소년이 된 시기입니다.

아이 울음소리, 재롱소리로 가득해야 할 시간을 성경은 통째로 지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과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과 하갈은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요?
어머니 하갈이 너의 이름은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셨다고 했지만
그의 삶에는 어머니를 구박하는 주인 사모님과 아버지 이지만
아버지 같지 않은 주인 아브람과 자신의 삶에 나타나지 않는 그들만의
하나님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갈등과 아픔은 이미 이때부터
예견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 나는 전능하니 너도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완전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신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언에 납작 엎드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언약)을 세우셨습니다.
17장에 13번 등장하는 언약은 쪼갠 고기 사이를
두 사람이 지나가는 동작이 포함된 개념 – 자르다 입니다.
같은 단어가 10번 이상 반복되는 것은
확고한 다짐, 의지를 엿보게 합니다.
그 의지는 아브람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 다른 이를 위한 삶입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자, 자신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람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계속 믿고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할례는 생후 8일된 남자 아기 생식기의 표피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증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sign이며
이 싸인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 표식은 이내 형식을 변질했고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육신의 할례를 그만두고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명기 30:8)

마음의 할례는 껍데기를 벗는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모셔올 때 군복을 벗고 제사장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장도, 목사도, 신부도, 장로, 권사도 무의미 합니다.
껍데기를 벗고 새이름으로 그분과의 언약을 지켜나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