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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하갈과 이스마엘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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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

임신 불가능한 부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자녀 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Amen)고 고백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아브람이 엘리에셀을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 처럼
아내 사래는 아브람에게 다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애굽(이집트)에 갔다가 바로(파라오)에게 얻어 온
자신의 여종 하갈(Hagar)과의 동침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우유부단한 사람이었고,
사래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대안을 제시한 것은 가나안 정착 10년차였습니다.
10년은 커녕 1-2년간 아무 응답이 없다면 누구나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이 없었다면 그럴수 있겠지만,
약속이 있을 때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약속은 더디고 오래 걸립니다.
대안은 쉽게 해결됩니다. 결과가 금방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약속의 응답은 아닙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동침하고 임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래를 내려다 보곤 했습니다.
사래는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씨를 받아 임신했다고 자기 주인을 깔보는
여종은 벌 받아 마땅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자녀였지만 부부싸움 끝에 사래는 하갈을 내쫓습니다.
하갈은 임신한 채로 광야로 나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때 광야에서 하나님이 하갈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돌아가 사래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갈의 몽에 있던 아이가 아브람의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 하나님과 상의한(기도) 방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의 실수를 거두어 주고 계십니다.
‘(하갈아) 너의 자손도 크게 번성케 하겠다’ (창세기 16:10)

아이의 이름은 이스마엘(이쉬마-엘, 쉬마/shema-듣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의 고난을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하갈은 내가 어떻게 이런 광야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고백했습니다.
보시는 하나님은 라아엘 입니다.
하갈은 그곳에서 발견한 우물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 나를 바라보시는 살아계신 분의 우물
이라고 지었습니다.

후에 확인되지만 아브람과 사래의 아들 이삭은
킥킥대다는 의성어(擬聲語, onomatopoeia)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주실 때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애굽에서 온 종의 아들은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다입니다.
그 엄마의 고백은 나를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종이 주인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종이 아닌 교만한 사장님 부부 아브람과 사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존귀한 자(아브람), 지배하는 자(사래)가
열방을 섬기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브엘라해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