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목회칼럼  

목회 칼럼

하나님을 위한 예배

2022.08.16

상세 본문

창세기 8장

땅위에 물이 말랐습니다.
노아가 다시한번 확인했을 때 땅은 완전히 말랐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배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상황이 안전하다고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내 경험과 내 판단이 옳다고 움직여서도 안됩니다.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방주의 문을 닫은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셨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해 제단(Alter)을 쌓고 정결한 짐승들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 몇을 잡아
그 제단위에 번제(Burnt offering)로 드렸습니다.(창세기 8:20)

성경에서 단을 쌓았다는 구절인 처음 등장합니다.
물론 인간의 예배는 이미 그전에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나타났지만
단을 쌓아 드린 예배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단은 동사로 ‘죽이다’입니다.
단은 제물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위에서 무언가는 죽어야(희생) 합니다.

단위에서 죽는 제물은 정결한 짐승이었습니다.
부정한 것이 죽어야 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정결한 동물이 죽는 곳이 제단이며 제사(예배)입니다.
불을 내려 주소서 제단위에 나를 드리니~ 라는 찬양의 고백은
실제로는 무시무시한 고백인 것입니다.
예배는 정결한 나를 죽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번제는(Burnt offering)은 고기와 기름을 태우는 제사입니다.
타는 연기가 하늘로 치솟을때 하나님은 그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고기 타는 냄새를 향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안맞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 향기는 Relax, Happy 입니다. 긴장이 풀리고, 행복해 지는 것은
번제로 가능합니다.

노아의 예배는 오늘날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 예배는 사람을 위한 예배가 아닙니다.
여호와를 위한 예배였고 태우는 번제는 여호와께 Relax와 Happy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완전한 희생입니다.
형태도 모양도 사라집니다.
태우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희생의 예배는 하나님을 흡족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삶의 예배를 가장 흡족해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희생제사만 받으시는 고대의 신들과 같은 신일까요?
22절은 이 땅에 밤과 낮, 여름과 겨울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치다’는 히)샤밧으로 Sabbath 안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받았고
하나님이 4계절과 밤과 낮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려운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버려도 그만인 지구, 타노스보다 더 강력한 손가락으로 한번만
튕기셔도 새로운 지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자.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꿰매고 덧대고, 빨고 말리고 다리는 중입니다.
그것은 새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건 변함이 없습니다.
기운 옷을 입는 사람은 더 조심합니다.

사계절과 밤과 낮이 쉬지(샤밧)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을 포기하고 사계절과 밤과낮을 직접 관리하신다는 것은 아닐까요?
계절이 바뀔때마다 폭염에는 더워 짜증이 나고
겨울에는 한파로 마음이 웅크러들지만 봄이 오고
가을이 올때 인간은 희망과 소망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안식을 포기하고 사계절과 밤과낮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수고로 인하여 다가오는 것인줄 믿습니다.

타락한 지구, 오염된 인간을 위해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보낸 계절의 수 만큼, 내가 보낸 밤과 낮만큼
하나님은 그 보다 더 수고하셨고 수고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을 쉬게 해드리고 행복하게 해드리는 예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