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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목회 칼럼

예배인가 경배인가

20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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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귀를 데리고 여기 있으라. 나와 아이는 저기 가서 경배한 다음
너희에게 함께 돌아오겠다.”(창세기 22:5)

이삭을 번제로 바쳐야 할 산이 눈에 들아온 아브라함은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 종들에게 말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나와 아들만 가야한다. 기다려라. 예배하고 오겠다.

한글 성경 기준으로 경배/예배 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개정에서는 예배(禮拜-예를 갖추어 절하다),
개역에서는 경배(敬拜-공경하여 절하다)로 표기된 이 단어는
영어로는 동일하게 Worship(worth+ship),
히브리어로는 동일하게 쌰하(shachah-שאהא)가 사용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예배와 경배가 특별한 구분없이 사용되었는데
예를 갖추든, 공경하든 엎드림(절하다), 순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설에, 성묘에 추도식과 장례시에 절하는 것에 진심인 것도
예배를 쉽게 받아들이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배보다도 성의없는 예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한 곳이 여기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찾아가는 길에 아브라함에게 들린 세 사람에게 절했고,
롯도 성문에 앉아 있다가 같은 일행을 보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나 한글 성경이 유독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곳에서
처음으로 예배/경배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찬양사역을
오래하고 예배인도자로 불려온 저에게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예배와 경배는 구분됩니다.
예배는 주일 오전 9시나 11시에 본당에만 들어가야 만날 수 있고.
경배는 주일 오후나 주중 청년부 모임에 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같은 개념인데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아닌 곡을 부를때는 경배와 찬양을 하자거나
CCM 혹은 복음성가를 부르자고 합니다.
찬송가집에 오히려 찬송에 해당하지 않는 노래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주일 오전 소위 (대)예배 에도 복음성가를 자주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배/경배의 정신을 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예배와 경배가 예를 갖추었느냐,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냐의
차이만 미세하게 있을 뿐 같은 단어라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어느 교회의 주보에 오늘부터 우리 교회는 오후 예배를
경배와 찬양 예배로 드리겠다는 공지는
교회가 사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을 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실제로 그 예배를 보면 약기가 조금 더 사용되고,
복음성가로 분류한 곡들을 조금 더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작 10-15분 정도의 밴드와 싱어가 퇴장하면
다시 오전 11시 혹은 9시의 분위기로 오후 예배는 진행됩니다.

예배와 경배를 구분하는 순간 단순히 단어를 혼동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이원론에 빠지게 됩니다.
예배의 본질은 성가대나 까운, 강대상과 본당, 담임목사가 집례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첫 예배/경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아낌없이 그분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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