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두 번째 기도
2013.11.14상세 본문
두 번째 기도 / 이용우
다른 사람들도 역시 같은 마음이겠지만 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최 선생의 기도가 시작되기 를 기다렸다. 까칠하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보아 오늘 순모임의 시작기도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엉뚱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익살스러운 의도가 다분히 섞인 농담이겠지만 순원 중의 한 사람이 만들어 온 쿠키를 가리키며 ‘이거 생김은 괜찮은데 맛이 너무 없네’ 라든지, 예리함이 넘치는 어떤 집사님을 향해서는 ‘당신이나 나나 까 칠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예전의 그대는 정말 밥맛없는 사람이었어.’ 같은 낯선 말들을 최 선생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내던져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두 사람이 이미 교 분이 있던 사이라 흉허물이 없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최 선생의 그 무지막지한 비난을 ‘맞는 말 이예요, 과거의 나는 아마 그렇게 보였을 거예요’ 하며 눈도 깜작하지 않고 받아넘기는 집사님의 맞 장구도 평범은 넘어선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최 선생의 날선 화살촉은 주로 여성들을 향하기 일쑤였다. 보통 대여섯 가정이 모이는 순모임의 참석 자들이 대게 부부동반인 점을 감안할 때 그런 최 선생의 진 농담은 가끔 위험수위를 넘나들기도 하지 만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인해 대게 웃음에 묻혀 지나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오히려 최 선생에게 조크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기분나빠하기는커녕, 되래 그 것을 반기며 열광한다는 것이다. 교양 있는 표정으로 거룩한 말씀만 주고받는 순모임에 어느 날 황야 의 건맨처럼 짠! 하고 나타난 최 선생으로 인해 새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내 아내는 아예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최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에 박수치고 깔깔거렸다. 아내는 지난 주일에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순모임에서 있었던 얘기를 재미있게 했더니 곁에서 듣던 사람이 자기도 우리 순모임에 끼워달 라고 애원했다며, 사람들이 우리 순을 부러워한다고까지 말했다. 최 선생 내외는 지난 2월의 첫 순모임부터 우리 긍휼 2순에 참여했다. “나 사실 처음에는 이 순이 별로였어요. 뭐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한 두 사람의 첫 인 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는데 사실 그게 다 내 까탈스런 성격 탓 이지요.” 그런 말로 인사를 시작한 최 선생은 그 동안 아내에게 이끌려 구경꾼처럼 교회를 다니던 자신이 어떻 게 이 순모임에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간증을 그 특유의 솔직한 달변으로 쏟아 놓았다. “나는 내 아들놈이 신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로 신앙이 무지했던 사람입니 다. 마누라가 나 몰래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마땅찮게 생각했었지요. 그러던 제가 어느 날 내 손으로 십일조를 착, 써냈습니다. 처음으로 십일조 금액을 체크에 쓰고 사인을 마친 기분, 표현할 수 없을 정 도로 가슴이 충만하고 뿌듯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기타를 치며 어메이징그레이스를 백번도 더 불렀습 니다. 사무실 테이블에 이십년도 넘게 꽂혀 있던 성경을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던 내가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어요. 정말로 어메이징 한 일이지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지만 어쨌든 최 선생의 간증은 그 때까지 그 행함 에 이르지 못한 참석자에게는 정신이 번쩍 나도록 찔림을 주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를 너무했던 것인지 그날의 순모임 시작기도는 최 선생답지 않게 힘이 잔뜩 들어가 고 거룩함이 충만한 평범 기도로 시종일관했다. “ 지난 모임에서 얘기했지만 그 샌프란시스코의 친구 부인 임종직전에 기도하고 오늘이 내 생애에 두 번째 하는 기도입니다. 조금 전 식사할 때 소화가 안 될 정도로 오늘 기도가 부담이 되었어요. 그때는 어설펐지만 이건 꼭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하는 생각에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기도를 했는데, 오늘은 멍석을 깔고 앉아 정식으로 하려니 상당히 프레셰를 받내요.” 최 선생의 고백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기도 좋았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하며 위로를 했다. 최 선 생이 말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첫 번째 기도라는 것은 절친한 친구 부인이 병을 얻어 임종을 맞게 되었 는데, 평소 신앙이 없던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예수를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솟구쳐 난생 처음 으로 죽어가는 이의 손을 잡고 예수 믿음을 고백 받은 일이다. 최 선생은 평소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자신은 절실한 마음이었다고 했는데 그때 순모임 의 참석자 모두는 큰 감동을 받았었다. 오래전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친구 내외는 남미계가 밀집한 지역에서 조그만 마켓을 오픈했는데 점차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지금은 그 부근에서 가장 큰 대형마켓이 되었고, 그 모든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친구의 부인이라는 것이었다. 최 선생의 친구라는 사람은 타고난 한량으로 서 울에서는 매일 빈들거리며 골프나 치러 다녔는데, 이곳으로 이민와서는 사장인지 박스보이 인지 모를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을했다고 한다. 두 내외가 오직 사업을 일으키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다가 부인 이 그렇게 떠나자 친구는 그만 넋을 잃었다는 것이다. 어카운팅을 전공한 부인이 마켓의 회계장부는 물론, 가정용 전기나 개스빌까지도 모두 처리했기에 그녀를 보내고 친구가 한 말이 '야, 나 전기요금도 한 번 안써봤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 하며 쓴웃음을 짓더라고 말했다. 최 선생은 두 아들도 알 토란같이 키워내고, 집안도 그만큼 일으켜 세웠는데 그런 사람이 너무 일찍 죽었다며 가슴아파했다. 이민 사회에 떠도는 말, ‘살만해지니까 병을 얻어 죽게 된다.’ 는 말 그대로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불쌍한 영혼에게 담대한 마음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용기 있게 행동한 최 선생의 담대함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성령의 감화 감동이 아니었다 고 부정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많을 때는 여섯 일곱 가정, 적을 때는 대여섯 사람이 모이는 우리 긍휼 2순은 이름 그대로 여리디 여 린 순이지만, 참으로 높이계시는 분의 큰 긍휼을 입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적당히 경험한 중년들로 이루어진 우리 순은 모임 때 마다 작고 큰 간증들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간증의 크기에 비례한 감동이 언제나 넘쳐난다. 급기야 지난 연말에는 그동안 함께했던 박 집사님 내외가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의 신학교로 유 학을 떠났다. 외동딸만 홀로 남겨두고 과감하게 소명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이곳에도 신학교가 많은데, 적당히 필요한 자격증을 쉽게 얻을 수가 있는데, 그런 편안한 길을 뿌리치고 정도를 가겠다며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이었다. 지난 연말 순모임이 겨울방학을 시작하며 박 집사님 네가 떠나고, 올 해 방학이 끝나며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최 선생 내외가 메웠다.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최 선생의 이름이 ‘만성’ 이라는 점이 더욱 그러하다. |
03-27-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