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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뒤돌아 보다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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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보다 / 이용우

 

 지난 해 이맘때쯤 ‘오두막의 창문을 열며’라는 제목으로 이곳에 글쓰기를 시작한지

이 달로 꼭 일 년이 되었다. 지난주까지 모두 52편의 짤막한 이야기들을 올렸는데

뒤돌아보면 대부분이 빈약하고 부끄러운 글들이다. 누구나 삶의 방식은 비슷하므로

읽는 분들이 우리의 사는 모습에 공감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용기를 냈지만, 더 발가

벗고 더 솔직하게 썼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처음 박 종길 목사님으로부터 교회 웹사이트에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

았을 때 나는 조금 망설였다. 아내는 좋은 글을 쓰면 교회 홈피의 활성화에 도움도

되고, 정기적으로 집필하면 자연히 작품도 쌓여 일거양득이라며 찬성했지만, 좋은

글이 말처럼 쉽게 써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섣불리 시작했다가 중도하차하는 불상사

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또 우리의 글

이 목사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두어 주간의 고민 끝에 아내와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도 있는 이 기회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도전해보자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교

회 홈피라 거룩하고 은혜로운 글들은 많으니 우리는 그저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써보자고, 그러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거라고 의기양양하게

전의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써나가기 시작하자 괜찮은 소재들은 금세 바닥이 나고,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하나 하는 고민으로 우리는 머리를 쥐어짜야했다. 그 점에 있어

서는 나보다도 아내가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찌어찌 한 편을 만들어 홈피에 올리

고나면 큰 숙제를 해결했다는 표정으로 이제 당신 차례야, 하며 홀가분해하지만 한

주간이라는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가 버리고 아내는 또다시 이야기꺼리를 찾느라 쩟

쩟, 혀를 차고 눈을 껌벅이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풀타임 직장생활에 가사노동과 틴에이저 딸 뒷바라지만으로도 숨이 찬데, 거기에

다 글쓰기라는 덧짐까지 졌으니 그 중압감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상상이 가고도 남

는 일이다. 그 고충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수요일까지 아무 기척이 없으면

나는 아내를 쿡 찌른다.

오두막 원고는 어떻게 된 거야? 그러면 신경이 곤두선 아내는 아이고, 쪼지 말아요,

지금 쓰고 있다고요! 하며 짜증을 낸다.

며칠 전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이제 1년이 되었으니 두 주에 한 편씩 올리는 방식으

로 바꾸면 어떻겠느냐, 힘들면 그렇게 해라, 지금이 변화를 줄 수 있는 찬스다, 아내

는 내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노, 하고 머리를 저었다. 매 주 우리글을 기다

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간격이 뜨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땐가 아내는 교우독자로부터 녹차와 커피 선물을 받고 좋아하기도 하고, 우리

글이 재미있다며 그린이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아내는 글쓰기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독자들의 그런 관심에 희열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직장생활과 문업에 관계된 갖가지 집필로 인해 수면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피곤이 겹치지만, 내가 받은 유일한 탈렌트가 글쓰기이기에 가능한 한 나에게 주어

진 잔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아래의 글은 지난 4월 17일 부활주

간에 말씀노트에 쓴 단상이다.

요한복음 5장 1~16절

설교제목 : 일어나 걸어가라

(1)은혜를 사모하라 (2)말씀에 순종하라 (3)예수를 증거하라

고난기간 중에 하루를 선택하여 금식하고,

즐겨하는 것을 금하여 주의 고난에 참여할 것.

베데스다 연못가의 많은 환자들 중에 38년 된 환자를 찾아준 것처럼

예수께서 자신의 직권으로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나를 고치시고, 세우시고, 자신의 주신 소명을 이루시리라, 아멘.

PS : 조금 일찍 와서 성가대의 연습 찬양을 듣고 있는데 박 목사님께서 앞으로 가시

다가 내 곁에 서시더니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셨다. 나는 얼른

‘요즈음 소재가 고갈되어서 좋은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 했더니 목사님께서 ‘아닙

니다, 너무 좋은 글들을 쓰십니다, 정말 은혜 받고 있습니다.’ 하시고 앞쪽의 당신 자

리로 가셨다. 나는 <개울건너 오두막>과 소설가협회에 보낼 단편소설, 그리고 장편

<태평양>을 구상하느라, 또 생업으로 육신이 지치고 피곤한 때에 주신 목사님의 격

려로 인해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었다. 참으로 필요한 때에 주님께서 목사님을 통

해 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는 설교시간에 성경말씀보다도 예화를 즐겨 적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그 날의 말

씀노트에는 위의 글이 적혀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저희 부부의 못난 글을 읽어주신 독자, 교우님들께 부끄러운 마음으

로 깊이 고개 숙인다. 부족한 글에 격려와 지적의 말씀을 남겨주신 애정에 또한 감

사드린다. 나처럼 리플은 달지 않고 가만히 읽고 살며시 다녀가시는 방문자들께 화

면으로 투과된 따듯한 시선을 보내드린다.

저희 부부, 여러분의 사랑에 힘입어 더욱 여문 글쓰기를 약속드리며, 추수감사절을

맞은 여러분의 가정위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린다

 

201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