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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집에 가고 싶다.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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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 / 이 용우

 

 어서 가라고, 부인이 기다릴 테니 어서 가보라고, 언제나 당신이 먼저 그렇게 말하

던 박 시인이 오늘은 오히려 일어서려는 나를 붙잡았다.

“이 선생, 조금만… 더 있다 가시오. 간호원 말고는 오늘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너무

나 적적하고… 또 혼자 있으면 이 칙칙한 분위기가… 못 견디게… 싫습니다.”

 

박 시인은 나를 보며 울듯이 말했다. 그렇잖아도 사오피트간격으로 침대 세 개를 놓

고, 그 사이를 커튼으로 칸막이한 양로병실의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생각하면서

도, 그것이 재정문제가 결부된 남의 가정사이기에 아무말도하지 못했다.

 

 박 시인의 침대는 병실의 맨 안쪽에 있어서 지나갈 때마다 자연스레 앞쪽의 환자들

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병실입구 첫머리의 환자는 언제나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있

어서 나이가 얼마나 된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남자병실이니까 기력이 소진한 할

아버지 환자가 누워있으려니 짐작할 뿐이었다. 팔십 중반으로 보이는 가운데 자리

의 환자는 간혹 침대위에 앉아있기도 했지만 그 역시 십중팔구는 입구 쪽을 향해 모

로 누워있었다. 가운데 환자는 박 시인을 등지고 있는 꼴인데, 그렇게 누워서는 우

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방귀를 부욱부욱, 뀌어댔다.

 

병원복도를 지나다 보면 자기 방의 침대에 앉아서 또는 휠체어를 타고 나온 환자들

이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물론, 뭐라고 말을 건네며 벙긋벙긋 웃기도하고

더러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어떤 할머니 환자는 목을 잘

가누지 못해 흘기듯 치뜬 눈으로 째려보며 누구야, 너 누구야? 하고 손을 내두르기

도 해서 나는 빠르게 그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이런 풍경에 더하여 정체를 알 수 없

는 눅눅하고 들큰한 냄새가 병실을 점령하고 있어서 나는 조금만 오래 머물면 속이

매슥거렸다.

 

 박 시인은 나에게 휴대폰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더니 자기 집으로 전화를 넣어보라

고 했다. 나는 박 시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자판을 눌렀다. 신호음이 서너 차례

건너간 후에 박 시인의 작은 딸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얼른 전화기를 박 시인에게

로 넘겼다.

 “자야, 집에 있나? 오늘은 여기 안올끼가? 그래… 마 됐다. 그리고 자야, 이 말 잘 듣

거래이. 자야, 나 이제 여기 더 못 있겠다… 그래, 집에 가고 싶다… 뭐라고? 아니다

자야, 나 혼자 할 수 있다, 호스에 음식 넣는 거 나 혼자 너끈히 할 수 있다. 뭐한다고

월페어고 메디칼이고 이 양로병원에 다 내주고 바깥 병원비는 생돈으로 무나 말이

다. 아이다, 아이다, 내 월페어 팔백불로 택시타고 병원에 다니면 된다. 니 신세 안

진다… 우옜던 집에 가고 싶다.”

양로병원에 입원을 하면 환자의 월페어와 메디칼이 모두 양로병원의 관리 아래로

들어가기 때문에 전문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로 외부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라도 하면

그 비용은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박 시인은 작은 딸과 한참을 더 승강이를 펼치다가 급기야는 ‘어쨌든 이번 주말에

는 집으로 가야겠다!’ 는 말로 오금을 박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 박 시인을 보고 있

자니 까맣게 잊고 있던 십여 년 전의 모습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모친이 노환으로 헐리욷장로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그

런데 병원생활이 한 달 두 달 길어지자 모친은 그만 집 생각이 간절해졌던 것이다.

허지만 그것은 모친의 생각 일뿐, 어머니의 상태가 위중하다고 본 친구는 귀를 막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문병을 갔더니 친구의 모친은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어여, 자네가 애아범한테 한 번 말해보소, 제발 날 좀 집으로 데려가라고… 내 말은

듣질 않지만 친구가 권하면 안 듣겠나. 죽더라도… 내 집에 가서… 맘 편하게 죽고

싶네.”

나는 예, 어머니, 하고 천연덕스레 대답했지만 그 말을 친구에게 전하지 않았다. 왜

냐하면 모친의 말이 있기 며칠 전에 친구 내외가 병원복도에서 하던 말을 들었기 때

문이었다. 둘 중 하나가, 어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는데 어쩌지? 하자, 다른 하나가,

안돼, 그랬다가 집에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 라며 눈을 부라렸던 것이다. 그로부

터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친구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바라던 집으로 돌

아가지 못한 채.

 “얼굴 피부가 거북이등짝 같아요. 로숀이라도 바르니까 이만하지… 맨 얼굴로 있으

면 비늘이 하얗게 덮습니다. 속에서 울화가 치미니까… 목에 열이 나고… 발진도 생

기고…”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며 품위를 잃지 않던 박 시인이 오늘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기간의 병원 생활이 노 시인의 고매한 인격까지 황폐하

게 만든 모양이었다.

“얼굴에 비늘이 일어난다고요, 한 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박 시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암요, 만져보세요. 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조심

스레 손을 들어 올리던 나는 문득 오래전 세상을 떠난 선친이 생각났다. 내 의지로

언제 한번이나 아버지의 얼굴을 만져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았지

만 그런 풍경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 아버지의 얼굴도 만져보지 않았던 나는 난생처

음으로 윗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만져보았다. 턱관절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조심조

심 노인의 볼을 쓸었다. 과연 손끝에 느껴질 정도 까칠한 비늘이 얼굴을 덮고 있었

다. 가슴이 싸, 하게 아려왔다. 부디 박 시인이 자신의 바램처럼 이번 주말에는 집으

로 돌아가게 되기를 가만히 빌었다.

 

201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