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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시행착오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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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홍순복

 

 나는 소파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때 그린이 내 앞에서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보는

듯 했다. 그러더니 엄마, 하고 불러놓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린이 뜸들이며 말할 땐

조금 수상한 게 있다. 뭔가 아쉽고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린이 나를 나직하

게 부를 때는 무슨 엉뚱한 것을 원할 때가 많다. 나는 조금 긴장을 하고 딸아이의 대

답을 기다렸다.

“말해, 불러놓고 뭐야?”

“ 음…..나 학교 옮기고 싶어.”

“ 뭐야 ? 벌써 끝난 일을 가지고 또 시작이야!”

 나는 베고 있던 쿠션을 그린을 향해 확 던졌다. 날아간 쿠션이 그린의 머리에 맞았

다. 그러나 그린은 아무런 동요 없이 오히려 침착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미들스클을 졸업한 후 그린은 나와 남편에게 배정된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보내

달라고 했다. 동네 한적하고 쾌적한 환경의 노스우드 하이스클를 두고 왜 복잡하고

먼 곳으로 간다는 건지 울며 떼를 쓰던 그린을 우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떤

아이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학교인데 철부지 같다고 하며 우리 둘은 큰소리로

합창하며 단념시켰다. 이해는 간다. 2년 동안 학교안과 밖에서 친한 친구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우리와 다르게 큰길 위쪽에 살아서 얼바인 하이로 가게 됐고 그린만 덜

렁 혼자가 되었다. 친구 아이들을 보니 괜찮고 해서 슬립오버도 여러 번 허락했었

다.

 엊그제 개학을 해서 책과 체육복도 구입했고 학부모회에 회비도 냈는데 말이다. 이

제 와서 또 지난 일을 거론하기가 피곤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지만 시

간이 지나면 좋은 친구도 생길 거라고 그린의 마음을 다독거렸는데 겨우 개학 이틀

만에 딸의 마음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 엄마, 다시 생각해봐. 4년 동안 다녀야 할 학교야. 친구가 없으면 어떡하겠어. 수

업이 끝나면 다음 시간까지 혼자 있게 돼. 그래서 걱정하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

어. 제발 다시 생각해줘. 플리즈!”

그린은 빌듯 애원했다. 등록할 때 만난 아이와 잠시 이야기도 하던데 그 아이는 친

구가 아이냐고 물으니 그냥 하이, 하는 정도라고 했다. 하이스클은 이미 미들스클때

친했던 아이들이 그대로 올라가 친구가 되기 때문에 하이스클에 가서 새로 친구를

사귀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동네 길을 따라 걸어가 포톨라 큰길 하나만 건너면 위험하지 않고 좋은데 왜 얼바인

하이를 가려고 하는지 속이 상했다. 그러나 잠시 스치는 걱정이 나를 불안하게 했

다. 앞으로 대학을 가야하는 데 학교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

었다.

 나는 그린을 내 옆으로 앉히고 그래, 그럼 다시 생각할게 하니 금방 얼굴이 환해지

며 나를 껴안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얼바인 하이로 보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린은 컴퓨터에 앉더니 어딘가 이메일을 급히 보냈다. 그린은 자기 학교

교장선생님께 보냈다고 했다. 학교를 옮기고 싶다는 내용 이였단다.

 그러더니 그린이 자기 방청소를 하겠다고 올라갔다. 기분이 아주 좋을 때 평소 내

게 거절하던 것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한다. 한 참 후에 올라가 보니 나보다 더 깨

끗이 방안을 훤하게 치워놨다. 요렇게 잘 하는 것을 가시네, 어찌 한 번도 안하는지

얄미워서 등짝을 한 대 쳤다. 그래도 좋은지 실실 웃기만 했다. 친구들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다음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이 왔는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얼바인 교육

구로 메일을 하라고 주소를 줬단다. 그린은 즉시 얼바인 교육구로 메일을 보내서 옮

겨야하는 이유를 말했다고 했다. 친한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로 가고 싶고 또 학교

옆에 저녁 늦게까지 오픈하는 시립도서실이 있어서 더욱 좋다고 했단다. 그리고 교

육구에서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지금까지의 사정을 솔직히 말해주고 그래서 허락했

다는 말을 하라고 했다.

그린은 일 년 후면 누구나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이왕이면 빨리 가고

싶어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일 년이 지난 후에 가도 그 친구들이 너를 잊지 않고 기

다려주겠냐고 해도 그 아이들은 좋은 친구들이라 꼭 그럴 거라며 염려 없다고 했다.

4년을 힘들게 다니는 것 보다 3년 동안 좋은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린은 자전거로 등교하겠다지만 얼바인 하이로 가는 길은 신호등이 여러 개라 시

간도 많이 걸리고 달리는 차들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2011-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