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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카운티 페어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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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티 페어 / 용우

 

  신문에 오렌지카운티 페어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행사 소개와 함께 인근에서 오는

관람객들의 편리를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얼바인은 샌드케년에 있는 메트로링크에서 출발하는데, 행사장까지 왕복 3달러라고

했다. 그리고 셔틀버스 티켓에 있는 쿠폰을 사용하면 행사장 입장권을 2달러에 구입

할 수 있다고 한다. 페어 입장권은 성인 기준 11달러이다. 또 직접 차를 몰고 가면 주

차료도 7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메트로링크까지만 가면 편안하게 셔틀버스를 타고

적은 비용으로 페어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배차 시간 때문에 줄 서 기다리는 인내

심만 갖춘다면 제법 괜찮은 나들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식구끼리만 가자고 하면 그린이 싫다고 할 것 같아서 꾀를 냈다. 그린에게 개울

반대편에 사는 단짝 친구 엘리사도 함께 가자고 바람을 넣었다. 언니들 뒤에 항상 붙

어 다니는 엘리사의 여동생이 생각나서 그 아이도 원하면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걔

네들의 셔틀버스 요금도, 페어 입장료도 다 내주겠다고 하자 그린이 오케이, 했다.

셔틀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메트로링크 대합실에서 30분 정도 기

다린 후 버스에 올라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일요일 오후 시간이었는데 페어그라운드는 생각처럼 붐비질 않았다. 행사장 안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서로 편하게 놀자며 아이들과 헤어졌다.

아내와 나는 갑자기 한가해져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스적스적 걸었다. 바스켓

에 공을 던져 넣어 인형을 받는 놀이도 구경하고, 총으로 과녁을 꿰뚫어 장난감을 타

는 뻔한 게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다닥다닥 붙은 부스에서 제 각각의 특징과 아

이디어로 손님을 끄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갑자기 꺄악, 하는 괴성이

터져서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 높은 곳에서 회전놀이 기구가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

다.

“어휴, 무서워, 저런 걸 어떻게 탈까. 저 밑으로 늘어진 발들이 흡사 덕장에 걸린 오

징어다리 같네, 아이 징그러워.”

아내는 조그만 것들이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것을 징그러워하고, 솟구쳐 오르거나

곤두박질치는 것들을 무서워한다. 마치 팜 스프링 벌판에 늘어선 풍차처럼, 세 개의

뻗친 날개에 가지런히 사람을 묶어 상하좌우로 회전하는 그 놀이기구는 아내가 싫어

하는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반대방향으로 끌었다.

“우리는 저걸 타자.”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아내는 기절하듯 놀란다.

“어머, 저렇게 높은 걸 어떻게 타, 보기만 해도 어지럽네. 아유, 나는 싫어.”

작년 가을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mummy ride’ 를 탄 후, 구역질까지 할 정도로 혼

이 났던 아내는 놀이기구라면 으레 질겁을 한다.

“아니야, 저건 그냥 천천히 한 바퀴를 돌기만 하는 거야. 저기 봐, 어린 애들도 타잖

아. 여기 있는 기구 중에 제일 높이 올라가지만 가장 안전한 것이라고.”

마차 바퀴를 50배쯤 키워놓은 크기의 ‘Grand wheel’은 덩치만 클 뿐, 빠르지도 무섭

지도 않은 놀이기구다. 산타모니카 피어에는 ‘Pacific wheel’ 이라는 이름으로, 그리

고 페어가 열리는 곳이라면 으레 빠지지 않고 돌아가는 ‘큰 수레바퀴’ 이다.

아내는 한참 살펴보다가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면면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타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안내원은 한 사람당 50센트짜리 라플티켓

10장을 내라고 했다. 우리는 티켓 20장을 떼어주고 네 사람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크기의 미니케이블카에 올라탔다.

큰 수레바퀴가 천천히 돌아 올라갔다. 바퀴가 제일 꼭대기 정점에 이르자 페어그라

운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자동차가 빼곡히 깔린 주차장을 넘어 시내정경이 훤

하게 펼쳐졌다.

“야, 경치 좋다, 하나도 안 무섭네.”

아내는 히히 웃으며 신기한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린과 친구들을 찾아보자며 고

개를 내밀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이곳 저곳에서 흔들고, 돌고, 내달리는

놀이기구들과, 촘촘히 잇대어진 부스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인파들로 하여 페어그

라운드는 장관을 이루었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와 꺅꺅거리는 괴성이 끊이질 않

았다. 눈과 귀를 아무리 크게 열고 기우려도 그 소리와 모습들을 담기에는 역부족이

었다.

큰 수레바퀴는 네 번을 돌고 멈추어 서더니 우리를 내려주었다. 땅에 내려서자 다시

한가로워졌다. 스적스적 걷다보니 핫도그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핫도그가

먹고 싶어졌다. 아내는 입 버린다며 핫도그 대신 콘덕을 사먹으라고 했다. 가격표를

보니 콘덕 하나에 4불이었다. 당연히 두 개를 주문하려는데 아내가 하나만 사라고

한다. 자기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밖에서는 1불이면 충분한 것을 4불이나 주려니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겠다.

“이런데 오면 으레 비싸려니 생각해야지. 이런 것도 다 재미라고.”

“알아, 그런데 나 정말 생각 없다니까.”

할 수없이 하나만 사서 두어 번 베어 먹다가 쓱 내밀었더니 헤, 웃으면 덥석 잘라먹

는다. 그래,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반씩 나눠먹으면 되지 두 개나 살 필요가 뭐있담.

두 사람이 콘덕 하나를 들고 이리두리번 저리두리번거리며 우리는 또 스적스적 걸었

다.

 

2012.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