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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같이 걷는 길/ 홍순복

20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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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따라 파도가 높다. 하얀 물보라가 치솟는다. 바다는 검고 초록 그리고 하얀 물결로

세 가지 색을 이룬다. 바닷바람이 코와 가슴으로 훅, 하고 들어온다. 음이온이 나오는 것

같다.

 J를 따라 걷는 크리스털 코브 비치는 싱그럽다. 입장료가 2시간에 10불이라 붐비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차를 주차하고 나무로 깔아놓은 길을

걷다보면 도마뱀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길옆엔 꽃무더기가 양탄자같이 깔려있어 그

위에 눕고 싶기도 하다.

오랫동안 J는 특별한 날 이외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어쩌다 걷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칠 작은 것도 그녀에겐 모두 친구들이다. 펠리컨이 지나가자 저것 좀

봐요, 펠리컨에요, 고래도 나왔어요, 갈매기가 열다섯 마리에요, 흥분하며 즐거워한다.

시내에는 뜨거운 오후 2시이지만 비치는 시원하다. 긴 옷을 입어도 더운지 모른다.

그녀와 1시간 반을 넘게 걷는다. 그녀의 보폭을 맞추느라 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오고갔어요. 그때엔 욕심이 없어지더라고요. 죽음도 생각하고

처리할 것들도 미리 해둬야 했어요. 늘 읽고 기억하던 시편 구절이 절실히 느껴졌어요. 아,

이런 거구나.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구나.-

-그랬군요. 저도 처음에 병명을 알았을 때 사실 두렵더군요. 먼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이해할 것 같아요. 집사님은 나보다 더 심했으니까요.―

그녀가 말하는 요약된 의미를 나는 알 것 같았다.

 J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지만 같은 다락방 방모였기에 교회 안에서 만나면

인사정도만 하고 지냈다. 3년 전 그녀가 아프다는 소식에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할지

그녀에게 다가갈 방법을 몰랐다. 병이 나기 전에 그녀는 늘 힘들어 하는 유약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해 지쳐있었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카드에 돈을 넣어 식사라도 하라고 전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전화를 해서 너무 많이 줬다며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평소 깔끔한 성격이 드러났다.

순간 잘못했나?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가 하루 즐거운 식사를 하면 좋겠단 마음에

그러시면 제가 부끄러우니 사양하지 마시라고 간청했다.

다음해 추수감사절에 그녀는 내게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 속에는 내가 준 것보다 두 배가

넘는 액수가 들어 있었다. 나도 그녀에게 전화해서 이러시면 안돼요, 라고 하자 그녀는

깔깔 웃으며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자신은 생활이 어렵진 않다고 했다. 부담이 되었나보다.

나는 그녀의 허락을 받아 어려운 이에게 그 돈을 전해주며 J를 위한 기도부탁을 했다. 그

후 가끔씩 그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 달라졌다. 매일 걸어서 인지 피부도 알맞게 그을리고 건강해보였다.

혼자 걸어도 자연을 친구삼아 걷는 것이 좋다고 했다. 우리는 걷다가 쉬기 위해 비치파라솔

앞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놀랍게도 그녀의 유머가 배꼽을 잡게 한다. 나는 그것을 듣고

바로 옮기려 해도 금세 까먹고 만다. 그녀의 성대모사는 특별하다. 요즘 내가 다녔던

G교회의 건강프로그램에 J도 다닌 적이 있단다. 그 강사의 흉내를 낼 때면 얼마나 똑같이

하는지 배를 잡고 웃는다.

-근데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법을 잘 몰라요. 나도 그랬지만. 일단 나같이 중병

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 말에요. 교회 사이트에 나에 대해 올리는 건 좀 그렇더라고요.

자세하게 열거하며 기도해달라고 말이죠. 취지는 좋아요. 중보기도팀에 다락방에 아는

이들은 다 알고 기도하겠지요. 하지만 그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보고 얼마나 기도하겠나

싶어요. –

그녀 말에 나도 교회 사이트 페이스 북에 올라온 나에 대한 글에 기분이 안 좋았던 적이

있다. 거기까지 올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내가 암환자란 것이 쪽팔린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교회 담당자는 한명이라도 더 많이 환우를 위해 기도하라고 상기시키는

거지만 기분이 묘해졌다. J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베드민턴회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였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비빔밥정도였다.

주문시에 콩나물, 고기등을 빼달라고 부탁하니 웨이츄레스는 왜 그러냐고 자꾸 물었다.

먹을 수 없다고 하자, 옆에 회원이 아주 큰소리로 암환자에요, 라고 소릴 질렀다.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엑스레이와 엠알아이를 찍는 센터에 가면 직원이 내게 질문을 할 때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소곤대듯 조심스럽게 묻는다. 예민해진 환자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할까. 그런데 사람들은 곧잘 그런 배려심을 잊어버린다.

J는 이제 자기와 같이 아픈 이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단다. 상대가 자신에게

털어놓는다면 모를까 가장 심적으로 힘든 부분을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은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 내가 그녀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것도 같이 느끼고 겪은 것을

서로 이해하고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 연초에 J는 집 앞산에서 혼자 걷다 공사 중인 곳에 발을 헛디뎌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쇠파이프에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지금은 잘 걷지만. 그 일에 대해 내가

사고만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라고 말하자 그녀는 감사해요 했다.

-내가 이렇게 건강해져 식구들 위해 밥을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니 다 감사하죠. 저는

원래 낙천주의에요. 말기가 되도록 병명을 모른 채 일하고 집에 오면 죽을 것 같아

누워있기만 했어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상상이 가요. 모두 그 병이 들면

나른하며 하고 매사에 하고싶은 의욕이 떨어지잖아요.―

남편이 콜레스톨이 높았는데 약을 복용 않고도 아주 정상인이 됐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기가 먹는 환자 음식을 같이 먹어서 덤으로 건강이 좋아졌단다. 그런 남편은 발마사지를

배워 매일 아내에게 봉사하는 착한 사람이란다.

일주일에 한번 그녀와 걷는 날이 기다려진다. 또 어떤 유머를 가지고 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