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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베이비 시터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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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 홍순복

 

 아이는 개울을 건너다 말고 다리위에 서서 물었다. 저 건 뭐야? 연꽃이야. 근데 왜, 물위에서 살아? 응, 연꽃은 원래 물에서 사는 꽃이야. 잘봐, 저녁이라 꽃이 오므려졌어. 내일 아침이면 또 핀다. 네 살배기 예담이는 궁금한 게 많은지 아직은 낯가림을 할만 한데 똘똘하게 묻는다. 고사리손 같단 말이 실감나듯 아이의 작은 손이 잡은 내 손안에서 꼼지락 거렸다.

 집으로 들어서자 강아지가 있냐고 물었다.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죽었어. 왜?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아직 죽음이란 단어를 알지 못할 것 같아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럴 땐 구찌가 살았으면 아이하고 놀 텐데… 죽은 강아지가 갑자기 보고 싶다. 아이를  돌본적이 별로없어 어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이가 재잘 재잘 말을 잘해서 마음이 놓였다. 때가 되어서 무엇을 먹여야 하나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 잘 먹어요, 그런데 국이 없으면 안돼요. 할머니가 키워서 국이 없으면 큰일 나는 아이에요.  했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어보니 국거리가 없어서 카레를 만들어 주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제 엄마는 잘 먹는다고 했는데 어쩌나.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계란말이 해줄까? 했더니 응, 한다. 멸치 볶음은? 그러자 아이는 활짝 웃으며  나 그거 좋아해, 한다. 나는 급히 잔멸치를 볶고 계란말이를 해서 아이 앞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숟가락 들 생각을 하지 않고 먹여달라고 한다. 아니야, 네살인데 혼자 먹어야지. 내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어색하게 수저를 놀린다. 밥이 반은 입으로 들어가고 반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멸치를 밥숟갈 위에 올려주고 계란말이는 따로 하나씩 주자 잘 받아먹었다.

 농장에서 사온 올개닠 딸기를 주었더니 아이가 나는 딸기만 좋아해, 하며 흡족해 한다. 다른 과일도 먹어야지, 했더니 아니야, 딸기가 빨개서 예뻐 라고 자기 할말만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는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 엄마가 예담이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요, 했는데 정말 아이는 남다른 색감을 만들었다. 그때 아이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공부하는 사이에 아이가 궁금했던지 우리 예담이 잘 놀죠? 묻는다.

 아이 엄마는 나의 일대일 동반자 S자매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라 일대일 공부가 잘 될까 했는데 다행히 성숙해서 걱정을 덜었다. 그러던 어느날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데 교육기간이 13주나 걸린다고 하며 베이비시터를 구해야겠다고 했다. 그말에 나는 수요일 저녁이라면 예배참석을 못하잖아, 하는 염려가 앞섰지만 S자매 형편으로 보아 아무래도 내가 아이를 돌봐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저녁 한차례 아이때문에 묶인다는게 조금은 부담이 되기는 했다. S자매는 아이 맡길곳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그런일이 돈을 쓰고도 만족한 결과를 얻기 힘들기에 나는 이것도 양육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맡아주겠노라 했다. S자매는 미안해하며 정말 고마워했다. 맛있는 저녁이나 한 번 사면 돼요, 했더니 집사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해요 , 하며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 날이 됐다. 마침 그날은 여행간 교우 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에게 밥을 줘야했다. 아이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아 예담이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다.

 우리가 들어서자 강아지는 케이지 안에서 공중으로 점프를 하며 좋아했다. 녀석을 밖으로 내 놓자 같이 놀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였다. 아침에 보고 저녁에 가니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녀석을 긁어주며 만져주자 옆에서 예담이가 한마디 했다. 나는 누구하고 놀아? 그래 네가 놀아봐. 내가 강아지를 아이쪽으로 밀어주자 좋다고 펄쩍 뛰어왔다. 아이와 키가 엇비슷한 강아지가 달려들자 예담이는 몸을 움추렸다. 결국 강아지 발톱에 팔뚝을 긁힌 아이가 무섭다며 케이지에 집어넣으라고 했다. 나는 흥분한 강아지가 조용해질 때 까지 케이지 안에 가두었다. 아이는 밖에서 강아지를 보는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아이는 갑자기 내게 물었다. 왜, 강아지가 좋은 집에서 살아? 그건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을 만났으니까 그렇지. 잠시후 아이는 강아지 보는 재미가 식었는지 이층으로 올라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이층으로 데려갔더니 이방저방을 들러보며 좋네, 했다. 어른같은 말투에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제 엄마가 하는 대로 배운 것 같다. 예담이는 영리하고 귀여웠다. 특히 말을 잘 했다.

 아이가 피를 한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갔다. 아이 다음에 볼일을 보기위해 변기에 앉아있었다. 그때였다 .어느새 열려진 문사이로 머리를 디밀고 강아지가 들어왔다. 그런 녀석은 순식간에 달려오더니 뜻밖에도 내엉덩이를 마구 핥았다. 그것을 본 아이는 갑자기 깔깔대며 웃기시작했다. 얼마나 크고 심하게 웃는지 가냘픈 아이의 몸이 쓰러질듯 흔들거렸다. 나는 얼른 강아지를 밀쳐냈다. 그래도 아이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니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묻자. 강아지!! 집사님 엉덩이 핥았어! 하며 또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이는 제 엄마가 하듯이 나를 꼬박 꼬박 집사님이라 부른다. 그것도 귀엽고 재미있다.

 다음 주엔 피자를 만들어 준다고 하자, 아이는 좋아라 하며 손뼉을 쳤다. 그러며 아이는 나는 치즈피자만 좋아해 한다.  그건 토마토소스는 넣지 말란 거였다. 알았어, 네것은 치즈만 놓고 나는 다 넣어서 먹을게. 집사님 피자 정말 맛있다, 했더니 예담이는 오! 맛있겠다, 하며 짝짝 손벽을 쳤다. 이만하면 베이비시터로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