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 – 친구해요
2017.10.30상세 본문
친구해요/ 홍순복
남편은 오렌지카운티 한인축제가 CGV극장에서 열린다며 P선생님을 모시고 구경 가자고 했다. 요사이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 힘겨워 거절하던 나는 P 선생님과 같이,란 말에 따라나섰다.
먹거리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가 여기저기 부스를 기웃거렸다. 꼬치에 꿰어 굽는 치킨이 사람들을 유혹했다. 하나에 5불짜리 콘핫도그도 맛스럽게 눈길을 끌었다. 이것저것 집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둘러 앉아 먹기 시작했다. 핫도그를 케첩에 찍어 먹는 맛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아프다는 이유로 건강식을 해오던 나는 오늘 하루쯤은 망가져 먹기로 했다. P선생님과 어울리려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을 했다.
가끔 P선생님을 만나 밥을 먹고 찻집에 들러 문학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보다 16살이 연배이지만 그녀와 세대 차이는 느낄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조크도 아주 맛깔스럽게 한다. 저 연세에 어찌 저런 것을 다 기억하는지 그런 그녀에 비해 나의 기억력은 한계를 느낀다.
처음 P선생님을 만났을 땐 도도해보이고 지성과 그 모든 것을 겸비한 사람이라 조금 범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몇몇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수필가 문인들이 소설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남편이 6개월 강의를 하며 친해졌다.
그 옛날 명문대 출신으로 이곳에 유학을 온 재원이었다. 유명한 물리학자인 남편과 사별하고 문단에 늦게 나왔지만 실력은 단단하다. 아직도 그 연세에 시조 50편을 외우고 있음은 젊은이들을 감탄하게 했다. 그녀의 글은 간결하고 엑기스 같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야기를 나누던 P선생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나, 버리지 말아요, 죽을 때 까지 친구해요, 나, 살아야 한 십년이야.’ 하며 서글퍼했다.
내게는 변함이 없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진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용우씨는 매력은 있지만 친구해줄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에 말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아침에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하고 쓸쓸할 때가 많아, 했었다.
어느 날 P선생님 교회 친구들 몇몇이 만나자고 해서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아무도 없고 80된 노인 한 사람이 앉아있더라고. 나중에 들으니 외로우니까 친구나 하라고 소개를 했다고 했다. 잠시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전 NEFLEX로 영화 한 편을 봤다. ‘Our souls at night. ’로버트 헤드포드와 제인폰다가 나오는 영화이다. 외로운 싱글인 그들은 한 이웃에 살면서 별로 오고가지 않고 이름정도만 알 정도이다. 어느 날 Addie 역인 제인폰다가 Louis역을 맡은 헤드포드집을 두드린다. 할 말이 있다며 말문을 여는 모습이 신선했다.
함께 잠을 자고 이야기하고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녀의 제의를 곧바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Louise 는 생각해본다고 하더니 다음날 마켓봉지에 잠옷을 넣어가지고 그녀의집 뒷문을 두드린다.
영화의 끝 장면은 Addie의 아들과 손자가 그녀 집으로 이사 옴으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전처럼 초라하게 고개를 떨구고 식사를 하는 Louis모습이 한 없이 처량해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잠자리에서 서로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잠이 든다. 요즘엔 노인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즐겨본다. 대화체가 빠르지 않고 머잖아 내게도 그런 삶이 찾아올 것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편은 한 동안 내게 섭섭했었다는 고백을 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한 참 신나게 말하다보면 남편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에게 웃기네, 같은 막말을 한다는 거였다. 우리가 동갑내기라면 그런 말이 괜찮을 것 같은데 나이차이가 제법 있는 관계로 그에겐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다. 남편을 하대하는 언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언제 어디서 했는지 기억조차 없으니 딱할 노릇이다. 사실 남편은 내가 우아한 여자이기를 바란다. 지적이고 점잖은 사람 말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가끔씩 내게서 양아치 같은 기질이 보인다고 했다. 어쩌나,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그런 건 아닌지, 처음엔 내 속을 물같이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고 하더니 이제는 불평이다.
영화를 본 후로 가끔 상념에 잠길 때가 있다. 혹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하면 남편은 어떤 모습을 할까? 그는 헤드포드의 쓸쓸한 일상보다 더 초라할 것 같다. 힘겹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늘 하던 대로 손 모아 기도하고 부엌으로 절룩대며 걷겠지. 오븐에 냄비를 올리고, 그가 좋아하는 라면 하나 끊여 식탁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후르륵대며 먹겠지. 그러다 서러운 생각이 들면 마른 얼굴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겠지. 아니, 어쩌면 제인폰다같은 이웃여인이 있어 그의 문을 두드릴는지도 모르지. 허지만 아니야, 남편보다 내가 좀 더 오래 사는 그림이 좋을 것 같아. 물론 그 바램이 이루어질는지는 하나님만 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