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 – 희엘
2017.11.10상세 본문
희엘 / 이 용우
8월 마지막 주일 설교를 끝으로 안식 월에 들어간 권 목사님을 대신해 말씀을 전하실 첫 설교자로 김 소리 목사님이 오셨다. 평택 온누리교회를 담당했고 지금은 서빙고 비서실장으로 봉직한다는 김 소리 목사님은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은 젊은 목자였다.
김 소리 목사님은 얼바인 온누리교회에서의 첫 설교를 준비하며 아무 생각 없이 어린 딸(6살) 희엘에게 ‘아빠가 어떻게 말했으면 좋겠니?’ 하고 물었더니 ‘하나님을 생각나게 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답을 해서 머리를 한 대 쿵, 맞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가슴이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날 예배시간 동안 희엘, 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이를 자주 묵상했다. 어쩌면 여섯 살짜리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특별히 영력이 뛰어난 아이가 아닐까, 결혼 십년 만에 간절한 기도로 얻은 딸이라니 하나님의 각별한 섭리가 작용하는 건 아닐까, 하는 등의 생각이었다. 이름도 아빠는 ‘소리’ 딸은 ‘희엘’ 이다. ‘소리’는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희엘’은 무슨 뜻일까. 나는 ‘희애’를 ‘희엘’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아니지, 그렇게 평범한 구식 이름을 지었을 리 없어, 하며 소리 목사님 부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예배 후 로비에서 인사하는 김 소리목님께 물었다. 목사님은 자신의 이름 ‘소리’는 일찍 돌아가신 부친께서 아들이 태어나면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처럼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사람을 삼겠다고 서원하여 지은 것이고, 딸아이의 이름 ‘희엘’은 엘로힘의 ‘엘’과 기쁠‘喜’자를 조합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는 뜻으로 ‘희엘’이라 지었다고 했다. 그러며 소리 목사님은 ‘그렇게 궁금해 하시는 것을 보니 저희 이름에 대해서도 설교시간에 교우님들께도 한 번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했다.
그렇게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번에는 또 희엘이라는 아이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짧은 한 달 일정으로 오신 분의 시간이 얼마나 빡빡하실까 하는 염려로 주저했지만 마음이 자꾸 끌려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 예배 후에 소리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며 조심스레 뜻을 밝혔다. 다행스럽게도 목사님은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확인하시더니 귀국하기 바로 전날에 시간이 비었다며 만남을 허락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목사님 가족과 식사약속한 일을 말하고 어떤 곳에서 대접하면 좋을 지를 상의했다. 아내는 소리 목사님의 말씀 중에 희엘이 아토피가 있다고 했는데 아무거나 먹을까? 양식으로 대접하면 아이의 기억에 남겠지만 혹시 좋아하지 않으면 곤란하잖아, 하며 걱정했다. 그래서 희엘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가요? 하고 목사님께 문자를 보냈더니 한 참 후에 한식이에요, 하는 답이 왔다.
드디어 약속한 저녁이 되어 우리는 Culver 길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만났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에서 건너온 프렌차이즈 구이집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선택이 풍부한 플러톤이나 부에나팍의 한식당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곳 지리도 잘 모르고 시간도 없는 분을 힘들게 할 것 같아 얼바인으로 정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 셋, 목사님네 세 식구가 고기구이집 테이블에 둘러앉아 비로소 자세한 인사를 나누었다.
궁금하게 보고 싶던 희엘을 직접 마주해보니 아이가 아주 야무지고 똑똑한 모습이었다. 나는 희엘이 ‘하나님을 생각나게 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거룩한 말을 하였으므로 당연히 백설공주처럼 우아한 소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희엘은 나의 상상과는 다른 방면에서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살 어린아이지만 당차고 예리했다.
나는 그저 예의로 아이에게 메뉴판을 들려주며 무엇을 먹을지 골라보세요, 했는데 희엘은 한참 뚫어지게 살피더니 이거, 하며 메뉴판을 짚었다. 많이 해본 모습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모님이나 소리 목사님도 덤덤하게 대하는 것을 보니 희엘이 그런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한다는 듯, 당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희엘이 벌써 한글쯤은 터득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이가 선택한 메뉴는 양념갈비였다. 그날 각자 이런저런 구이종류를 몇 가지 주문했는데 희엘이 선택한 양념갈비가 제일 맛있는 고기였다. 그 증거로 양념갈비는 바로 동이 나서 급히 하나를 더 추가해야 했다. 희엘이 고기구이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구경거리가 되었다. 희엘은 또 매번 고기를 양념그릇에 담긴 하얀 소금에 꼭꼭 찍어 먹었는데 그 모습이 생소하고 재미있어서 우리 세 식구는 몇 번이나 웃었다. 희엘은 입으로는 얌얌 바쁘게 고기를 먹으며 눈은 나름 철판위의 고기가 익어가는 정도를 가늠하느라 초롱초롱 빛이 났다. 소리 목사님과 사모님이 희엘의 양쪽에 앉아 익은 고기를 집어주느라 당신들은 먹지도 못할 만큼 아이 시중들기에 바빴다.
피부병과 먹거리의 상관관계에 문외한인 우리는 아이가 아토피라는데 고기구이가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아이는 오직 먹기에 집중하며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말도 재잘재잘 잘하고 웃기도 잘했다. 고기구이집을 선택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거듭 들만큼 희엘이 잘먹었다.
그 저녁 고기구이를 맛있게 먹고 포만감에 젖은 희엘은 식당을 나와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주차장에서 우리 가족 세 사람의 볼에 돌아가며 뽀뽀를 해주었다. 애교가 철철 넘치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말 기분 짱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아이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하나님이 생각났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새삼스레 아이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티 없이 밝은 얼굴이 달빛아래 환히 빛났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희엘 가족과 작별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사모님이 그러는데 언젠가 무슨 일로 큰소리를 냈더니 희엘이 ‘엄마가 주인 되려고 하지 마!’ 라고 해서 깜짝 놀랐데, 희엘이 정말 특별한 아이지?’ 우리는 서로 돌아보며 정말 그러네, 하고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엘,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