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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선배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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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 홍순복

 

 차에서 내린 아이에게 그는 50불 지폐를 건네며 말했다.

"엄마 꽃 예쁜 것으로 사거라."

 아이는 이미 많이 와본 곳이라 그런지 나보다 한발 앞서 꽃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엄마 꽃은 파란색을 사야지."

" 엄마가 파란색을 좋아하셨니?"

" 아니 몰라 그냥 좋아할 것 같아서."

 아이는 손에 파란색이 조금 섞인 것을 집었다. 어느새 따라 들어온 그가 점원에게 밑동은 잘라달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꽃을 많이 사봤기에 그의 주문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꽃을 사들고 밖으로 나온 아이는

나에게 걸어가자고 했다. 그는 다시 차로 서행하고 아이와 나는 잔디밭을 밝으며 아이 엄마의 묘를 찾아

걸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흙속에 묻혔지만 머리 쪽으로 짐작되는 곳은 피해서 걸었다. 아이는 제

엄마 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표적이 될 만한 나무하나 없는 묘지인데 잘 찾아갔다. 아이 엄마의 묘는

길가에 홀로 있었다.

 그가 흙속에 묻힌 화병을 뽑아내자 아이는 길 가장자리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왔다. 많이 해본

익숙한 솜씨였다.  아직 양쪽 주변엔 묘를 쓰지 않아 빈자리로 있었다. 그가 조금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

었다.

" 여보, 나, 왔어 나 결혼했어."

" 아빠 지난번 말했잖아. 엄마가 알아."

" 그때는 할 거라고 했지."

아이는 수긍하듯 오케이라고 했다.

"여보, 우리 딸 많이 컸어. 공부도 잘하고 그리고 이 사람이 잘 키울 거야 걱정하지 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비석의 사진 속 그녀는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강하게 보이는 인상과 당당

하며 건강한 모습이었다. 여걸처럼 카리스마까지 있어보였다.1955년에 태어나 2003년 마친 짧은 생애

였다. 오늘이 그녀의 6주기라고 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고 싶다고 우겨서 그렇게 했는데 제대로 키

우지도 못한 채 갔다며 불쌍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 했다. 그럴 때 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내게도 '여보'라고 부르고 그녀에게도 같은 호칭을 쓸 때엔 기분이 묘해졌다. 어디서 왔는지 노란 잠자

리가 우리 곁을 맴돌다 날아갔다. 그녀 뒤쪽엔 한국여자의 묘지가 있었다. 젊고 예쁜 얼굴이었다. 언제

나 와보면 아무도 다녀간 흔적이 없고 꽃병은 늘 풀로 가려져 꽃이 꽂힌 것을 본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

다. 아마도 남편이 재혼을 해서 멀리 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게도 한마디 하라고 했다.

" 저…..그린엄마…… 그린이 새엄마에요. 이렇게 예쁜 딸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잘 키울게요."

더 할 말이 없었다. 뭐라 더 하고 싶지만 하늘에 있을 그녀에게 앙상한 뼈로 남았을 무덤가에서 산 사람

들의 대화가 왠지 어색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계속 잔디밭에 앉아 풀을 뽑고 있었다.

" 엄마에게 인사 해야지!"

" 없어 할말이…… 리멤버하는 게 없어….."

그녀 옆자리가 휑하니 비어서 그런지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마침 위쪽에는 하관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한 조객들의 조촐한 예식이었다. 누군가 하늘로 또 올라갔구나. 천주교 신부는 성수를 관

위에 흩뿌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8월의 맑은 날 같지 않게 침울했다.

 나는 결혼 전 남편에게 그의 죽은 아내에 대해 몇 가지 물었었다.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당신은 죽으면

어디에 묻힐 건지….

" 모르지, 그거야 죽은 후에 아이가 어떻게 할지."

나는 왜 그녀의 묘지 옆 빈자리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지 어쩔 수 없는 속물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후에

어찌되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 안에서 잠시나마 갈등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늘 아이 엄마에 대해 말해야 할 때 '그린엄마' 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그린엄마라고 부를는지 기분

이 우울해졌다. 이젠 내가 그린의 엄마가 됐는데도 말이다.

 그의 짐을 챙기다 앨범 하나를 열어봤다. 그의 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양복을 입은 그와 아이의 엄

마가 찍은 사진이었다. 약혼사진 같았다.

" 아이가 있으니 다 없앨 수 없어 그냥 두었어."

 그가 묻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가진 유품상자속의 사진들을 봤다. 앨범 속에는 출생부터

서너 살이 될 무렵까지의 아이 모습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사진 하나 하나에 또박 글씨로 적힌

그날의 일상을 요약해 놓았다. 아장 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걷는 모습을 바라보며 몹시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아이 엄마, 딸을 두고 떠나기 전 자신의 올케에게 아

이의 장래를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뒷이야기가 떠올랐다.

 추억 속의 사진들……..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 그저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가끔씩은 기억해 내

겠지. 허나 과거란 그저 일기장과 앨범 속에 남겨지는 것뿐이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그린엄마가 고향은 물론 같은 여고출신이라는 말에 너무도 깜짝 놀랐다. 우연치고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2년 선배이다. 어쩌면 규율부장 이였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미션 스쿨이었던

우리학교는 규율이 엄격했다. 교문 앞에서 후배들의 머리 길이를 귀밑 1cm로 재고 속치마를 검사하며

혼을 낸 선배가 그녀가 아니었을까.

 나는 남편에게 제의했다. 앞으로 아이 친엄마를 말할 때는 '당신선배'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고 . 그도

듣고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겐 하늘이 부여한 각자의 일들이 있다고 믿는다. 선배는 아이를 낳고 나는 기르고. 딸아이를 갖

고 싶다던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마음을 믿기로 했다.

" 선배 고마워요. 후배에게 인계해준 딸 잘 키울게요. "

그린이를 잘 돌보지 않으면 여고 때의 규율 부장처럼 선배는 이 어릿한 후배를 불러 세우고 따끔하게 혼

을 낼 것만 같다.

 

210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