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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사진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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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 순복

 

 딸아이의 방을 들어서면 책상위에 특별한 사진이 한 장 놓여있다. 상자 뚜껑에 붙은 액자 안에 활짝 웃

는 남녀의 사진이 들어 있는데 그 둘 사이에 엄지손가락만한 아기사진이 꽂혀 있다. 오랫동안 딸의 방을

드나들었지만 그 사진은 의아스러울 만치 내 시선밖에 있었다.

 아이 생모인 나의 선배와 남편이 함께 활짝 웃는 모습이다. 다행히 그가 검은 선글라스를 끼었기에 나

와 눈이 마주치진 않지만 그녀는 꼭 나를 바라보며 웃는 것 같았다. 하루에도 두서너 번씩 들락거렸건만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다.

 어느 날 아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남편의 사진들을 보게 됐다. 그때 앉은 자리에서 상자뚜껑에 붙

은 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언제 찍은 사진이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신혼여행가서 찍은 거야."

 "그럼, 저 조그만 애기사진은 그린이가 갖다가 붙였나?"

 "그랬겠지."

 가끔씩 남편의 지나간 시간을 묻게 되면 그는 가능한 짧은 단답형으로 대꾸를 했다. 자신의 과거를 들

추어내는 것이 뭔가 불편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때면 나의 궁금증이 더욱 머리를 들었다.

 딸아이의 방에 들어갈 때면 왠지 금지 구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아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이

후로 빨래한 옷가지를 두고 나올 때에도 의식적으로 책상위에 놓인 그 사진을 외면하곤 했다. 딸아이가

자기 생모를 날마다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고 혼자서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린 것에게 물어볼 수도 없

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저 어릴 적 앨범을 꺼내 보다가 잠들기도 하는 터였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는 부족했는지 모른다.

 딸아이는 요즘 부쩍 키가 커서 나보다도 1 인치가 높아졌다. 틴에이저인 딸은 자주 거울 앞에서 갸웃거

리고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전에는 백화점에 가면 앙증맞은 여자아이의 옷을 만지작거리기 일쑤

였는데 이제는 Old Navy 나 Forever 21 같은 곳에서 제법 어른스런 옷을 골라든다.

 어느 날 남편이 엘에이에 모임이 있어서 늦게 온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딸과 일찍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이는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놓는다. 친구 누구는 어떤 남자아이를 좋아하고 자기도 누

가 좋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딸아이 나이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그 시절 이야기도 하면서 함께 깔깔

거리고 웃었다.

그때 TV에서 암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며 머리를 말갛게 민 사람들이 화면에 비쳤다. 그러자 아이는 갑

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나를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엄마, 그 엄마하고 미장원 갔었어. 그런데 나를 차에 있으라 하고 엄마는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엄

마가 안 나와서 내가 미장원을 들여다봤는데 너무 무서웠어."

 " 왜 무서웠어?"

 " 엄마의 머리카락이 없어졌어. 그래서 엄마가 크레이지가 됐다고 생각했어."

 아이의 생모가 항암치료를 받으며 빠지는 머리칼을 감당할 수 없자 어느 날 삭발을 했더라는 이야기를

남편에게서 들었었다. 아마도 어린아이의 눈에 자기 엄마의 민둥머리가 무섭게 보였을 것이다. 제 엄마

가 병상에 있을 때 곁에 가지 않으려고 해서 아이의 엄마가 섭섭해 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 엄마 , 그 엄마 본 적 있어?"

낳은 엄마를 부를 때는 나와 구별하기 위해 ‘경희엄마’라고 이름을 붙여서 부르라 했지만 아이는 힘들다

며 언제나 자기 생모를 ‘그 엄마’로 호칭했다.

“내가 어떻게 네 엄마를 봤겠어. 그 엄마 하늘나라에 간 후에 아빠를 만났는데."

내말에 아이는 오 그렇지, 하며 어른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참에 아이의 마음을 떠보고 싶어서

슬며시 물었다.

 " 너, 그 엄마 많이 보고 싶으니? 그래서 책상에 사진을 놓아두는 거야?"

 내 물음에 아이는 아주 쉽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 아니, 그냥 나를 낳은 엄마니까."

 아이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며 짐을 정리하다가 제 아빠에게 물었다고 했다. 저 사진을 새집 책상위에

놓아도 되느냐고. 혹시 새엄마가 그걸 보고 슬퍼하면 어떡해하나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새엄마는 이해를 할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책상위에 놓아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서랍 속에

서 앨범하나를 가져와 내게 펼쳐보였다.

 “엄마, 여기 엄마 예쁘지?”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꽃나무 아래서 환하게 웃는 선배의 얼굴이 있었다.

 “그래, 네 엄마 정말 예쁘구나."

 “이렇게 엄마가 웃는 사진을 보면 무섭지 않아.”

아이는 제 혼자서도 앨범을 들여다보는 때가 있었다. 그것이 아이가 지난날을 추억한 다기 보다는 제 엄

마의 밝은 모습을 기억 속에 입력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 엄마, 이게 나야 예쁘지 날씬하고?”

 아이는 제 엄마 손을 잡고 있는 두세 살 무렵의 자기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 응, 정말 예쁘고 날씬하다. 얼른 다이어트 열심히 해서 저 예쁜 모습을 되찾아보렴.”

 “ 오케이, 알았어. 그렇게 할께.”

 다이어트라는 소리만 나와도 스트레스 준다며 투덜거리던 아이가 제 어릴 적사진을 보더니 마음이 바

뀌었는지 선선히 알았다는 대답을 했다. 허긴 아이가 전과는 달리 요즈음은 칼로리의 수치까지 따져가

며 음식을 먹는다. 키가 크는 만큼 외모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다이어트 해서 날씬해지면 여름에 라구나 비치에 가서 비키니 입고 예쁜 사진 많이 찍자. 알았지?”

 “ 그래, 그러자 엄마!”

 아이는 홱 몸을 돌려 내 목을 껴안았다. 그러는 아이의 등을 감싸 안고 어이구 예쁜 강아지, 하며 나는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를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러준 아이. 내속으로 낳

은 자식이 없기에 서로 비교할 일도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내 새끼라는 생각을 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아이의 책상위에 나의 통통한 얼굴도 사진으로 놓여지겠지. `

 

 

2010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