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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무서운 콘서트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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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콘서트/ 홍순복

 가장 바쁜 월요일 이였다. 회사로 그린이의 전화가 왔다. 메시지를 남기겠지 하고 받지 않았더니 거푸

서너 번을 한다. 그래도 받지 않자 이메일이 왔다. 궁금해서 메일을 열었다.

 " 엄마 사랑해! 지금 바쁘지? 그래서 전화 받지 못하는 거지, 할 말이 있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가수 그

룹이 오렌지카운티에 투어 공연을 온데. 펜클럽 가입비 25불만 내면 티켓은 그냥 보내준대. 나 사랑하면

오케이 해야 해. 아이 러브 유 소 마치 맘! 그리고 구찌 목욕도 해주고 운동도 시켜줄게."

 기가 찼다. 지난 달 애너하임 혼다센터에서 열렸던 아이돌스타 저스틴 비버 콘서트에 거금 150불을 내

고 다녀왔다. 13살 생일기념으로 한번만 보내 달라고 했던 것이 얼마나 됐다고 또 가겠다는 건지. 은근

히 화가 났다. 올해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기로 철석같이 약속하고 말이다.

 ALL TIME LOW라는 아메리칸 팝 펑크밴드 라고 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4인조 그룹 밴드의 공연

이었다.

나도 전화로 하기보다는 이메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곧바로 답을 보냈다.

 " 나도 사랑해 그린이를, 그러나 이건 너무 하다. 지난달에 다녀오고 또 간다는 거니? 그리고 너는 무슨

좋아하는 가수가 그리도 많으냐? 올해는 그만 가, 네가 날 사랑한다면 너도 엄마 말 들어라."

 퇴근해 돌아오자 아이는 나를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했다. 교회수양회를 가라면 친한 친구가 안가서 자

기도 싫다며 핑계하던 아이가 혼자 가겠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어쨌든 나는 이번 콘서트는 보내주기

싫었다. 풀타임 직장 일에 시달리는 주중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돌아오자 그린이는 제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졸라대었다. 당장 오케이였다. 늦게 낳은 딸이

라 그는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편이었다. 두 사람이 합세를 하자 나는 더 이상 반기를 들 힘이 없었다. 인

터넷으로 펜클럽회비를 내어주었다.

 드디어 11월 공연 날이 왔다. 아이는 공연시간보다 1시간 일찍 가야한다며 아침부터 채근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애너하임으로 향했다. 번듯한 빌딩이 아닌 단층이 모인 비즈니스 지역이었다. 외

등이 밝지 않아 길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는데 큰길까지 늘어진 여자아이들의 줄을 보고 쉽게 찾았다.

파킹할 곳을 찾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안은 어둑한 불빛과 음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느

껴졌다. 자동차 수리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렇게 가다보니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내 솜씨로 후

진하기엔 힘들어 보였다. 길가에 주차한 차들을 긁을 것만 같았다. 겁이 더럭 났다. 혹시 치한이라도 나

타나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옆 좌석에 앉은 그린은 공연시간에 늦을 까봐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 앞에선 큰소리를 쳤다.

 “걱정 마, 할 수 있어.”

 그렇게 큰소리를 쳤지만 내 운전 실력으로 그 골목을 빠져나오기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자동차 수리공

들로 보이는 젊은 남미계 서너 명이 나의 그런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처럼 그들의

얼굴도 검고 으스스해 보였다.

 주여! 저 좀 살려주세요. 오도 가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속으로 안타까운 기도를 하며 쩔쩔매고 있

을 때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수리공들 중 하나였다. 착해 보였다. 그에게 운전석을 내주고 옆자리로

옮겼다. 여자들은 운전을 잘 못한다고 혼자 소리를 중얼대며 전진과 후진을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차를

골목으로부터 빼내주었다. 너무도 고마웠다. 진심으로 고맙단 말을 서너 번이나 했다.

 그때 그린이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늦었다고 허둥대며 내 아이디를 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지만 아

이는 크레이지가 된 듯 내 가방에서 운전면허증을 빼낸 후 차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불안했다.

공연장소로 뒤쫓아 갔다. 수백 명의 그린이 또래 여자아이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주차장에서 무리지어

왁자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린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데 험상궂

은 사내 하나가 내 쪽으로 오며 이 파킹 장에서 나가라고 했다. 사내의 검은 잠바에 STAFF라고 써져 있

었다. 내가 멍하니 쳐다보니까 네 딸이 여기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며 사정을 말했더니 전화를

하라고 했다. 몇 번 만에 전화를 받은 그린이 아이들 무리속의 어디에선가 튀어나오더니 운전면허증을

주고는 가버렸다.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11시쯤 끝나니까 그때 픽업을 하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서성대다 10시쯤에 공연장으로 향했다. 피곤한 얼굴로 남편

이 따라 나서며 차에서 자겠다고 했다.

 공연장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텝이란 사내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백미러로 출입구를 지켜보며

1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뒷좌석에서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11시 20분쯤 되었을 때 키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휘청거리며 쓰러질듯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그 뒤에서

말총머리사내가 여자아이를 부축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길 가 쪽 가로수 밑에 쪼그려 앉아 토악질을

했다. 사내는 등을 두드리며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저 여자아이가 술이나 마약 같은 것을 먹고 저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그린이가 저 공연장 안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서너 시간이 넘게 선체로 춤추고 흥분해서 소리를 지를 것이었다. 혹시 신문에 오르내리는 그런 흥

분제나 마약이라도 먹어서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상상력이 남다른 나는 자꾸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경찰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냐 는 남편의 말에 불안감이 더 가중되었다. 그

런 잡다한 생각에 잠겨있는 중에 드디어 11시 30분이 되자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참 뒤에

나온 그린이 뭔가를 흔들며 걸어왔다. 걸어오는 그린의 모양이 멀쩡해서 불안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

어졌다. 그린의 손에는 그룹밴드 로고가 새겨진 기타 피클이 들려있었다.

 " 너, 괜찮아? 무슨 일 없었어? 어떤 아이는 토하던데 무슨 약을 먹었나? "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아이는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언성을 높였다.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아직 유명

하지 않아 돈이 없어 멋진 혼다 센터처럼 좋은 곳에서 공연하지 못할 뿐이라고 그들을 두둔했다.

 " 공연 중에 그 여자애가 쓰러졌어. 그래서 스텝 한 사람이 데리고 나간 거야."

 그린이는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그 곱던 음성이 꺼칠한 허스키가 되어 있었다.

 " 다신 이런 곳에 오지 마, 얼마나 무서웠는데….."

 나는 그린이를 차에 태우자마자 얼른 그 무서운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부엌일을 마치고 이층 계단을 오르는데 그린이 제 아빠에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아빠, 그 그룹밴드가 스프링에 애너하임 스포츠센터에서 공연하는데 나 보내줄꺼지? 거긴 무서운데 아냐,

오케이?”

 

 

2011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