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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설화

201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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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舌禍) / 이용우

 

“당신은 백가지 잘해놓고 나쁜 말 한마디로 다 까먹는 사람이야!”

 아내는 그 말을 내던지고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을 나갔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나는 웃자고

한 말인데 아내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화를 내며 등을 보였다. 조금 전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며 활짝

피어나던 아침이 자욱한 안개에 뒤덮이는 느낌이었다.

 잠이 깨는 아침이면 우리는 누가 먼저이든 상대의 손을 찾아 잡는 것으로 일어난 기척을 알린다. 앞서

거니 뒤서거니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자리에 눕는다. 그렇게 누워서 수면으로 인해 이완되었던 몸의

근육과 세포들을 깨우느라 밤새 닫았던 입을 연다.

 아침을 빵으로 먹을까 밥으로 먹을까… 오늘은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오는 거지… 그린이 요즈음 걸어

서 등교하나 아니면 자전거로 하나… 구찌가 또 카펫에 똥 쌌으면… 대게 이런 말들을 잠 묻은 음성으로

주고받으며 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오늘 아침은 아내가 이 삼 일전부터 써온 자신의 수필로 입을 열었다.

“스토리는 이렇고 저런 것인데 구성은 요렇고 저렇게 했거든,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어, 정말이야.

카피 해줄게 점심시간에 한 번 읽어볼래?”

 눈을 뜨면 그 말을 하려고 밤새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아내는 잠이 홱 달아날 정도로 상기되어 있었

다. 자신의 말에 흥분해서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기까지 했다. 그 기분을 이해할만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작품 하나를 완성하면 다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기쁨을 갖게 된다. 더구나 자신이 완성한 작

품이 스스로에게 만족을 주기까지 한다면 그 성취감이란 무엇에도 견줄 수없는 환희가 되는 것이다.

“음, 그만하면 괜찮겠네… 재미있겠어. 잘했어, 수고했어.”

 나도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아내가 갑자기 윗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침대

에 앉은 채로 어깨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평소 자신의 글에 문제점이나 지적하던 내가 모처럼 칭

찬을 하자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새벽바람에 일어나 어깨춤을 추는 아내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

는 누운 채로 껄껄 웃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춤은 마돈난데 형상은 케이브맨이야, 하하하!”

 나의 그 한마디는 한껏 고조된 아내의 기분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뭐, 케이브맨? 그럼 내가 원시인처럼 보인다 그 말이야, 정말 내가 그렇게 보여? 말해봐, 다시 한 번 말

해봐!”

 태도가 돌변한 아내는 내가 무어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몇 마디 더 비난을 퍼붓더니, 바로 그 ‘당신은

백가지 잘하고 나쁜 말 한마디로 다 까먹는 사람’ 이란 말을 남기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그

말을 하던 순간의 마음 바닥에 살짝 깔렸던 생각은 나의 익살에 오히려 아내가 그래, 나 케이브맨이야,

원시인이 얼마나 순수한데, 라며 장단을 맞추리라 보았던 것인데 전혀 반대 방향으로 불똥이 튀어버린

것이었다.

 사실 자다가 일어나 부스스하게 엉클어진 머리로 어스름 새벽에 어깨춤을 추는 자기 아내의 모습을 보

며, 아 참 당신 예쁘다, 춤은 마돈나요 모습은 제니퍼 로페즈다, 라고 말하는 남편이 되기는 쉽지 않은 일

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순간의 느낌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솔직한 말이 아내의 노여움

을 사고 만 것이다. 아내에게 있어 남편의 솔직한 말은 나쁜 말이 되는 것이다.

“안내려와? 아침 안 먹어?”

 날선 아내의 목소리가 아래층으로부터 달려 올라왔다. 평소 같았으면 여보, 식사해요, 내려와요, 어쩌

고 했을 터인데 오늘 아침은 안내려와, 안 먹어, 하고 부정문을 거푸 날리며 심히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하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한 죄로 엉거주춤 층계를 내려오며 아래쪽

을 살폈다. 아내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부엌을 누비고 있는 사이로 언제 일어났는지 그린이 식탁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아 잘 잤니?”

 내 말에 그린이 고개를 끄덕 하더니 제 엄마 쪽을 바라보고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빠, 죠크를 하려면 굿 한 걸로 해야지. 레이디를 메드하게 하면 젠틀맨이 아니야. 얼른 엄마 허그 해주고 쏘리 해.”

 무엇이던 감추지 못하는 성격의 아내가 벌써 그린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딸에

게 그런 질책을 받으니 멎적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린의 말은 부정할 수없이 지당한 말이었다. 죠크

의 소재는 좋은 것을 사용하라는 것, 레이디를 언짢게 하는 남자는 신사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

인 말이다. 그 상식적인 말을 틴에저 딸의 입을 통해 들으니까 더 가슴이 찔렸다.

“딸에게 배워요 좀. 자기 아내에게 원시인이 뭐야, 원시인이…”

쌤통이다, 하는 표정으로 나를 거만하게 째려보며 아내가 빈정거렸다. 그린이 픽 웃으며 제 머리로 엄마

쪽을 끄떡, 가리킨다. 빨리 엄마에게 쏘리 하라는 신호였다. 나는 어쩔 수없이 아내에게로 비칠비칠 다

가갔다. 아내는 마치 난동 꾼을 제압하기위해 방망이를 빼어 든 경찰관처럼 서슬 퍼렇게 나무주걱을 꼬

나들고 다가서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아내의 어깨를 엉거주춤 껴안

았다.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쏘리.”

여직 분이 안 풀린 아내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두 팔에 힘을 바짝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