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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창-껴안음

2013.11.05

상세 본문

껴안음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성령이 자기를 껴안고 있는 느낌이나 환상을 이야기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이 껴안고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이 단순히 우연한 증언일까요.

성경을 보면 성령의 임재가 껴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경우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사도행전 10장

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10장 43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설교할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

려왔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에피핍토’(evpipi,ptw)라는 단어

를 쓰는데, 이 단어는 껴안다(embrace)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가 죄 사함을 설교

할 때 성령이 내려와 모든 사람을 깊이 껴안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성령은 언제나 예수님을 조명하고 예수님을 밝히는 사역을 하기에 우리들은 성령이 우리를 껴안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껴안고 있는 것과 동일한 안식과 기쁨과 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늘 자신을 예수님께 사랑 받는 자라고 요한복음에 기록하면서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자랑한 제자

였습니다. 그 요한 역시 요한복음 13장 25절에서 ‘에피핍토’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예수님의 품에 안겨

기대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껴안다’라는 ‘에피핍토’가 또한 잘 그려진 비유가 있습니다. 바로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타국에서 돼지를 쳐 더러워지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돌에 맞아 죽을지

도 모르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발견하고 아버지는 달려 나가(sprint) ‘에

피핍토’, 즉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처럼 ‘에피핍토’는 잃었다가

찾은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강인한 사랑과 의지가 담긴 껴안음입

니다.

성령이 우리를 껴안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를 껴안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우

리의 어떠한 죄도 기억하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치유하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껴안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잠언에는 예수님을 지혜로 표현하면서 예수님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예수님의 왼손에는 부와 명예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안으시면 예수님의 오른손과 왼손이 우리의 삶을 두르시고 반석 같이 지지해주십니다. 우리는 무력하여

예수님을 껴안을 수 없을 때조차도 예수님은 우리를 껴안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껴안고 계신 것

만으로도 끝없이 감사하고 기쁜데, 그의 오른손과 왼손에 담긴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이 우리 성도들을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품 안에 ‘에피핍토’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만 있으면 족하다고 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가장 근원적인 필요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

의 품 안에 안겨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끼고, 그분이 공급해주시는 떡과 포도

주를 마시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삼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물론 예수님의 오른손과 왼

손에 있는 축복을 누리는 은혜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껴안

음 때문이기에 넘치도록 충만한 은혜인 것입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