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개울건너 오두막-봄날은 간다

2013.11.14

상세 본문

봄날은 간다/ 홍 순복

 

 엄마와 함께 살 때 이야기다. 아들과 오랫동안 살다 이제는 딸네 집으로 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엄마는 한 동안 얼굴을 펴지 못했다. 생전의 아버지는 엄마와 신혼처럼 단둘이 살고 싶어 했다. 그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화급히 하늘로 떠난 아버지를 엄마는 몹시도 그리워했다. 남편 밥은 앉아서 먹는다는

데, 라는 말을 늘 중얼거렸다.

 이제는 아버지의 기억도 퇴색했는지 당신 몸만 아프다며 아이같이 칭얼댄다. 언니는 매일이다시피 엄

마를 보러 와서 목욕도 시켜드리고 이야기 동무도 돼 주었다. 엄마는 언니의 부드럽고 여자다운 면을 좋

아했다.

엄마가 조석으로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언니는 우리가 엄마위해 기도 많이 해야겠다고 말했다. 늙

으면 약해지고 당신 자신만 챙기며 단순해 지나보다. 같은 말을 반복할 때면 그거 들은 말이라고 하기가

무섭게 역정을 내며 아이처럼 토라진다. 옛날의 엄마 모습이 아니다.

 나는 가끔 엄마 앞에서 까불거리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엄마의 굳게 닫힌 입이 자물쇠가 열리듯 서

서히 웃음을 띠며 박수 치고 재미있어한다.

 " 너를 보면 네 아버지, 네 아버지를 보면 너, 둘이 너무 똑같아."

나의 급한 성격과 노래하기 좋아하는 것, 웃기는 것 등이 내가 아버지를 똑 닮았다고 그런다. 그러나 날

마다 엄마를 위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라고 항상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방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

기기도 하고 글도 쓰고 싶고 친구에게 이메일도 보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는 거다. 그러나 엄마는 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게다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내 애완견과 지내야 했으니 때로는 짜증을 부리

기도 했었다.

 중학교 때 나는 송창식의 노래를 좋아해 하루 만에 신곡들을 모조리 외워 학교에 가서 앞, 옆 그리고 뒷

자리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노래를 했다. 그 정도로 노래 외우는데 소질이 있었는데 연탄가스를 마신 후

기억력이 나빠져서 어떤 곡도 가사를 제대로 외우는 것이 없다. 그 이후로는 말하다가도 잊어버려 내가

무슨 말을 어디까지 했느냐고 상대에게 묻는 기이한 습관까지 생겼다.

 어느 날 언니가 엄마 목욕을 시켜드린 후 내 방으로 건너와 물었다.

" 너 인터넷에서 노래하나 찾아 줄 수 있니?"

" 그럼, 말만해 누구 노래인지."

곡명은 모른다며 첫 소절을 불러주었다. 나는 너무 웃음이 터져 나와 입을 막고 참으며 인터넷을 뒤졌

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 이라는 가사

의 노래였다.

 노래방에서 여자들이 많이 애창하는 곡이다. 언니의 노래 솜씨는 그리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음치는 면

한 수준이다. 기도하는 언니이지만 가끔씩은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지, 아니면 노래방에 가서 부를 노래

한곡 만드는 것인지, 궁금증이 머리를 들었지만 제목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때 구성지게 노래하는

일명 소리꾼 '장사익' 이 떴다. 그가 부른 노래가 바로 '봄날은 간다.' 였다. '댄서의 순정'도 들려주었다. 조

용필보다 더 애절한 창법으로 불러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슬프게 했다.

 며칠 후 언니는 노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잘 되나 보라며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언니는 몸을 천천히 움

직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법 들을 만 했다. 언니가 부르는 노래치고는 가장 잘 부르는 듯싶었

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저녁이었다. 겨울로 들어서는 늦가을이었다. 그날도 엄마의 기분은 오르락내

리락 했다. 언니가 들어서며 엄마의 안부부터 물었다. 괜찮아, 라고 하자 엄마 방으로 가자고 손짓했다.

나는 엄마의 침대 끝에 앉았다.

 " 엄마, 지금부터 위문 공연이 있어요. 가수는 저입니다."

언니의 말은 평소처럼 점잖고 조용했다. 나는 지난번 연습한 '봄날은 간다.'를 구성지게 부르겠지 잔뜩

기대를 하고 웃을 준비까지 했다. 언니는 검은색 바탕위에 빨간 꽃무늬가 놓인 드레스를 입었다. 언니는

다르게 보였다. 언니는 목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은 듯 헛기침을 크게 하고 우리 앞에 섰다. 쑥스러움

도 버렸는지 그 얼굴표정이 아주 진지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 언니, 빨리 시작해……"

 엄마와 나는 관객으로 박수를 치며 와우…….소리쳐 분위기를 돋웠다. 엄마도 기대가 되는지 닫혔던 입

을 벌려 히히 웃었다.

 –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 그렇게 언니는' 댄서의 순정'이란 노래를 먼저 불렀다.

언니는 열손가락을 차례로 구부렸다가 펴며 천정을 향해 뻗혔다. 그리곤 아래로 향하기도 하며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하는 대목에선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노래를 불렀다. 영락없이 동남아시아 여

인들이 추는 전통춤 같이 이리저리 흔들고 꼬며 멋들어지게 춤을 추었다. [자유부인]이라는 영화의 주제

가인 그 노래는 또 언제 배웠는지 몰랐다.

엄마와 나는 큰 박수로 앙코르를 했다. 언니는 진즉에 두 곡은 부르려고 생각했던 것인지 조금도 사양하

지 않고 이번에는 내가 인터넷에서 뽑아준 '봄날은 간다. '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니의 춤은 노래에 따라

달라졌다. 이번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들어 올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

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네 타듯이 일렁일렁 하며 곡에 맞춰 춤을 추었다.

 노래보다는 언니의 춤 솜씨가 초등학교 학예회 발표회를 보는 듯해서 엄마와 나는 배를 쥐고 웃었다.

나이가 60이나 된 큰딸이 효도 한답시고 기쁨조가 되어 그동안 쌓은 우아함을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엄마는 모처럼 시름을 잊고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평생 찬송가에 익숙한 엄마도 그 노래들을 아는지 코를 벌름거리며 너무도 좋아했다. 슬며시 가슴이 아

려왔다. 웃음 가운데 슬픔이 있다는 말처럼 언니의 노래와 춤이 즐거우면서도 눈물 나게 했다. 언니의

노래 따라 춤 따라 엄마의 봄날이 간다. 언니의 봄날도 간다.

 

 

04-17-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