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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사랑해

20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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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 홍순복

 

 둘째 언니에게서 엄마저녁 식사를 차려드리라고 전화가 왔다. 엄마를 모시고 사는 언니는 외출이라도

하려면 엄마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 우리 집과 1마일 남짓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왔

다. 나는 언니네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면 엄마에게 자주 들러보겠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

다. 미안한 마음에 회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언니네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누구냐? 하며 방

안에서 엄마가 소리를 쳤다.

 " 나예요. 순복이요."

 엄마방의 방문은 항상 열려져있다. 엄마는 문 쪽을 향해 오도카니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아침

에 일어나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 빼고는 항상 침대 한 가운데서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하루 종일 꼿꼿이 앉아있다. 침대보드에 등을 기대지도 않고 어떻게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있

는지 식구들 모두가 신기해한다. 그런 자세로 잠시만 앉아있어도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오기 마련

인데 엄마는 몇 번을 물어봐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엄마는 들어서는 나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 엄마는 내손을 덥석 잡더니 당신 볼에

갖다 댄다.

" 사랑하는 내 딸….."

 엄마의 손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밖에서 온 사람보다 손이 더 차갑다고 하자 치료를 받아도 그렇

다고 1년도 넘은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한다. 하루 종일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니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서

그럴 것이다. 늘 보는 딸이 뭐가 그리 애틋한지 엄마는 만날 때 마다 내손을 끌어다가 자기 얼굴에 부빈

다.

" 엄마가 널 제일 좋아하셔. 막내딸이라서 그런가봐. 엄마가 문소리만 나면 순복이가 오나, 하셔 일주일

에 한번은 너무 적어. 자주와."

 어느 날 언니는 엄마 사랑받는 네가 부럽다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도 언니의 전화가 없었다면 주말이나

잠시 들렀을 것이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식판위에 밥과 반찬을 조금씩 담아냈다. 콩나물국을 데워서 들고 들어갔더니 엄

마는 점심 먹은 빈 그릇을 내주었다. 밥풀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소화도 잘되나 보았

다. 침대 머리맡에는 과자. 떡. 강냉이. 바나나. 성경책 찬송가 라디오 등이 미니 마켓처럼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 소꿉장난하시나? 뒤숭숭해서 어찌 잠을 주무세요? 이런 것 다 치우지……"

" 편해서 여기다 두었어. 너도 뭐 좀 먹어라."

" 집에 가서 먹을래요."

말은 그랬지만 구수한 콩나물국이 내 코를 자극했다. 나도 국 한 그릇을 담아와 엄마와 함께 먹었다. 집

에서 기다릴 그린이와 먼 길 운전하고 올 남편 저녁을 위해 엄마와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 어릴 때 네 막내 보느라고 애썼어. 내가 새벽기도 다닐 때 말이야."

 엄마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는지 불쑥 내게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는 43세에 막내 남동

생을 낳았다. 엄마는 이웃집 친구와 우리학교 교감사모님과 삼총사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녔

다. 엄마가 새벽기도를 가고 나면 막내가 깨어 울었다. 나는 졸린 눈을 지르감고 막내를 업고 어르곤 했

다. 그러다가 너무 졸려서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딱딱한 방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어져서 잠들곤 했다. 그

런 나를 보고 동네 어른들은 새벽기도 가는 엄마가 아니라 애 보는 순복이가 천당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침마다 새벽기도를 다니던 엄마가 이제는 침대위에 오도카니 앉아 사람 오기만 기다리고 있

다.

 식사를 끝낸 엄마에게 기도해 줄까 물었더니 그러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등을 어루만지며 기도를 시작

했다. 엄마는 내 기도에 연신 아멘 과 감사를 반복했다. 기도가 끝나고 내가 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또 울

상을 지었다.

" 하루가 너무 지루해. 네 언니가 외출하면 말할 사람도 없어. 그래서 네 언니 밖에 가는 게 싫어."

" 엄마, 지루하면 기독교 방송 보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래요."엄마는 내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엉뚱하

게 얇고 따뜻한 바지 하나를 사달라고 한다. 그러나 몸이 엄청 불어 웬만한 옷을 갔다 입혀도 편하지가

않다며 반쯤은 벗고 계신다. 언니들과 내가 이곳저곳 다니며 엄마에게 맞을 것 하나 골라오면 맘에 안

든다고 타박을 해서 반품하기가 십상이다.

" 노인네가 까다로우시긴…… 아무거나 입으시지."

하면 엄마는 곧바로 대꾸하신다.

" 너희들도 늙어봐 다 귀찮아. 가볍고 편한 게 좋아."

그러더니 이번엔 선글라스도 하나 사오라고 했다. 병원가실 때 햇볕 때문에 눈이 아프다며.

" 네, 알았어요. 근데 옛날에 드린 것 어디다 두고."

" 몰라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았어요,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엄마는 몇 십 년 하는 똑같은 말을 내 등에 대고 했다.

" 차 조심하고."

" 네,"

 현관문을 열고 발 하나를 내 디뎠을 때 문득 그린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 엄마, 할머니에게 허그 안하면 나도 엄마 늙으면 똑같이 할 거야. 그냥 하이만 하고 허그는 안 해 줄 거

야."

아이의 그 말은 한편으로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을 찌르른 말이다. 나는 몸을 돌려 엄마에게로 되돌아갔

다. 엄마는 내가 왜 그러는지 멀뚱히 쳐다봤다. 나는 그런 엄마를 살며시 포옹을 했다. 그러자 또 사랑해,

라고 해야지. 하는 그린의 말이 들려왔다.

" 엄마, 사랑해요."

" 나도, 히히."

 엄마의 찡그렸던 얼굴이 금세 환해지며 앞니가 살짝 떨어져 나간 틀니를 보이며 웃었다

 

 

03-20-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