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삼겹살데이
2013.11.14상세 본문
삼겹살데이 / 이용우
착잡한 심정으로 차창을 스쳐가는 거리풍경을 내다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아내였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더니 안부가 궁금했나 보았다.
“회사에 잘 도착했어요?”
“아니, 잘못 도착했어. 나 지금 토잉카에 앉아 있어.”
“뭐라구, 토잉카! 왜? 사고 났어?”
“응, 너무 놀라진 말아. 프리웨이를 내리면서 커브를 돌다가 빗물에 미끄러졌어. 그래서 길 가장자리 시
멘트블록에 뒷바퀴를 부딪쳤는데 뭐 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기는… 토잉카에 끌려간다면서.”
“응, 토잉카에 끌려가는 건 맞는데 그리 대단하지는 않아. 시멘트블록을 치면서 뒷바퀴의 후레임만 휘었
지 바디는 멀쩡해.”
“참, 몸은 괜찮아? 그리고 다른 차와는 부딪치지 않았어?”
“응, 물에 살짝 미끄러진 거라 별 충격이 없었어. 그리고 프리웨이 출구라서 일방통행인데다 이른 아침
이라 뒤따라오는 차도 없어서 다른 차량과의 접촉사고도 없었어. 천만 다행이지, 그래서 뒷바퀴가 휘어
져 비틀거리는 차를 간신히 몰아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하고 감사기도부터 드렸다니까.”
“잘했어, 정말 그만하길 다행이네. 그런데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우리 보험 디덕터블이 천 불 인데…”
몇 번의 다급한 질문으로 상황을 파악한 아내는 한숨 돌렸는지 이내 현실적인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 트
리플에이의 토잉카를 기다리며 내가 한 걱정도 바로 그것이었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나의 눈에도 휘어
진 뒷바퀴를 수리하는 비용이 디덕터블을 넘어설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니 설령 그것을 넘어선다 해도
아예 몇 천불이나 되면 모를까 디덕터블에서 몇 백불 상회하는 정도의 견적이 나온다면 보험으로 처리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글세… 우선 바디샵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 여하튼 견적이 나오면 전화할게…”
내가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더니 잠시 침묵하던 아내는 힘없는 목소리로 알았어,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저
녁에 삼겹살 요리 맛있게 해준다며 ‘헤브 굿데이!’ 하고 손을 흔들던 아내였다. 아침의 그 낭랑했던 음성
이 뜻하지 않은 걱정꺼리로 인해 물먹은 솜처럼 눅눅하게 귓속에 달라붙었다.
“통화한 사람이 와이프 입니까?”
백미러를 통해 자신의 토잉카에 매달려오는 사고차량의 상태를 살펴가며 신중하게 주행하던 중동계의
드라이버가 입을 열었다. 한국말을 알아들었을 리 없지만 어림짐작으로 그렇게 묻는 것일 터였다.
“네, 아내가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참, 당신이 보기에 내 차의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 것 같습니까? 경
험이 많으시니까 잘 아시겠지요.”
내 물음에 그는 멋진 턱수염을 일그러뜨리며 슬쩍 미소를 짓더니 디덕터블이 얼마냐고 뭏었다. 내가 천
불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마 그 이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는 의미로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그가 대화의 방향을 바꾸며 그렇게 물어왔다.
"코리안입니다.“
“아, 코리안. 그럼 크리스챤이겠네요?”
나의 한국 사람이라는 대답에 그는 대뜸 크리스챤이냐고 물었다. 이방인인 그가 한국 사람은 크리스챤
일 거라고 보는 판단기준이 어디서 생긴 걸까 하는 신기함에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크리스챤이라는 걸.”
“네, 잘 알아요. 용감한 코리안 들이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를 보냈거든요.”
“당신의 나라는 어디인가요?”
“요르단입니다.”
“요르단? 그 나라는 이슬람국가 아닌가요?”
“그래요, 인구의 구십 삼 퍼센트가 무슬림이고 크리스챤이 칠 퍼센트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내 입에서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에 나는 그가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라디오 방송의
아침 뉴스려니 하고 무심히 들어 넘겼던 차 내부의 스피커 소리가 바로 영어 설교라는 사실이 문득 인식
되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보였다. 업무 중에도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는 토잉카 운전수가
모세처럼 거룩하게 보였다. 나는 갑자기 그의 이름이 알고 싶어졌다.
“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알파입니다.”
“반갑습니다, 알파 씨. 무슬림 나라의 크리스챤 형제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갑습니다.”
바디샵에서는 차의 상태를 점검하고 견적을 내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한 두 시간 후에 전화로 알려주
겠다고 했다. 알파는 내게 회사까지 태워주겠다며 토잉카에 타라고 했다.
“형제여,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나를 회사 앞에 내려주고 돌아가며 알파는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당신께도 같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손을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회사 동료들과 아침에 겪었던 헤프닝과 차량 수리비 따위를 곁들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바디샵으
로부터 전화가 왔다. 견적이 900 불정도 나온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엉뚱한 지출이 생겼으니 삼겹살 먹긴 틀렸겠네.”
내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동료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말 되네요, 살짝 궁금해지는데요.”
아내는 ‘헬로우’ 도 생략한 채 견적이 얼마냐는 것부터 물었다.
“구백불이래… 여보, 그래도 삼겹살은… 유효한 거지?”
동정심에 기대려고 그렇게 목청을 낮추었더니 아내는 여장부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엄, 삼겹살 많이 먹고 힘내서 돈 많이 벌어. 그래야 자동차수리비 복구하지. 오케이?”
“하하하, 오케이, 알았어!”
‘운전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침이 없다’ 는 미국 속담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고, 삼겹살도
그대로 먹게 되었으며, 만나기 힘든 요르단 형제에게 축복까지 받았으니 3 이 두 번 겹치는 ‘삼겹살데이’
가 그리 나쁜 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03-13-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