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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못말려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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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려/ 홍순복

 

 덜컹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에 놓인 디지털시계를 봤다. 밤 12시가 가까워 오고 있

었다. 남편이 샤워 후에 몸무게를 달고 있었다. 큰일이야, 눈금이 자꾸 올라가니,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체만 흰 타월을 두른 모습이 뚱뚱한 중년아줌마 같아 웃음이 나왔다. 나는 타월을 아무리 꼭 잡아 매

어도 잘 벗겨지던데 남편은 얼마나 꼼꼼한지 타이트 치마를 입은 것 같이 잘도 둘러매었다. 점점 늘어가

는 남편의 몸무게에 내가 더 신경이 쓰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아내인 나의 요리법이 남편 몸무게를

보탠다고 오해 할 것 같다. 몸무게가 얼마냐고 물으니 179 파운드라고 했다.

 내가 젖은 수건을 벗고 다시 올라가보라고 말하자 그는 이게 얼마나 되겠어, 하며 수건을 벗었다. 나신

이 된 그의 배는 영락없이 7.8개월 된 임산부였다. 약한 다리를 저 무게가 누르고 있다는 게 걱정이 되었

다. 얼마 전까지 열심히 침대위에서 복근 운동을 하더니 요즈음은 그나마도 힘들다며 휴식중이다. 다 벗

은 몸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터질 듯 솟아오른 배를 만지며 긴 거울 앞에서 옆과 앞을 번갈아 움직이며

바라본다. 그림 속 아담은 키도 크고 근육형인데 어째 나의 남편의 배는 저렇게 볼록할까. 어릴 적 가난

한 시골 아이들의 배가 연상돼 한숨짓게 했다. 수건을 뺀 몸무게가 177.5 파운드라며 믿을 수 없다고 해

서 나는 수건만 다시 달아보라고 했다. 저울 눈금이 움직이지 않았다. 체중계도 기본 무게가 필요한 가

보다. 1.5 파운드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남편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남편의 이중 턱은 좋은 인상을 둔하게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살찐 모습이 죄송하다고 주께 고백했듯이

남편도 그런 생각을 하면 좋겠다. 어느 날 남편은 주일날 단상에 서 있는 여자 성가대원 중에서 내가 제

일 뚱뚱하다고 했다. 흰 셔츠를 입은 날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여자가 좋아

하겠나. 나도 질세라 맞불을 놓았다. 강대상위에서 내려다보면 당신 얼굴만 보여, 팬케익 같이 넙적하고

크더라. 키도 작아 몸은 보이지 않고 얼굴만 보여, 라고 하자 남편은 그래도 뚱뚱한 당신이 좋아, 라고 말

을 바꾸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돼, 지금이 좋아, 라고 했다.

 허긴 나도 요즘 10파운드 이상이 늘었으니 남의 말 할 자격이 없다.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옷 입을 때마

다 짜증이 난다. 아무거나 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년이 되면 이유 없는 뱃살이 붙는다지만 아무래

도 먹는 음식이 문제일 것이다. 남편은 탄수화물을 즐긴다. 밥이나 국수 빵 따위 밀가루 음식을 포식하

며 포만감을 느껴야 수저를 놓는다. 나도 언제부턴가 남편과 딸 사이에서 서서히 식탐에 물들어 갔다.

아무래도 밥그릇을 작은 공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보통 밥그릇에 반쯤 채워주는 지금도 양이

적다고 불평을 하는데 작은 공기로 바꾸면 뭐라고 할지 걱정이다. 어릴 적 남편의 식성대로 함께 먹어온

딸아이도 엄마, 밥 없는 세상은 못살아요, 하고 노래를 한다.

 딸은 가끔씩 아빠를 탓한다. 아빠 체질을 닮아 먹성이 좋다는 것이다. 그 말이 엉뚱하지만은 않는 것 같

다.

남편은 긴 시간을 차속에서 앉아 운전하고, 앉아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늦은 식사를 하고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쓰기도 한다.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나는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밥을 풀 때 주걱으로 살살 달래어 펐다. 그러면 적은 양도 조금 많게 보이

게 하는 효과가 있다. 가끔 전을 부치거나 잡채 따위를 곁들이는 날도 밥은 평소와 같은 양을 먹는다. 밥

은 밥이고 잡채는 잡채란다. 생각 끝에 야채를 듬뿍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보았다. 불고기 조금하고 시

금치,깻잎,버섯,가지,콩나물,호박,당근까지 냉장고 속의 야채라는 야채는 모조리 집어넣고 밥은 그릇바

닥에 얇게 깔았다. 남편 얼굴을 슬쩍 훔쳐보니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왜 , 맛이 없어 그러냐고, 라

고 물었더니 남편은 밥은 없고 전부 야채뿐이야, 하며 아이처럼 울상을 지었다. 나는 참다못해 깔깔 웃

었다.

요즈음은 자기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내 모습이 가상했는지 밥 더 줄까요? 하고 물으면 아니야, 충분해

하며 손사래를 친다. 나 역시 더 줄 생각이 없는 빈말이다. 곁에 앉은 딸아이는 저는 많이 먹으면서 아빠

밥 많이 주면 않되, 하고 얄미운 주문을 한다.

 퇴근 후 저녁을 해놓고 외출을 했다. 그린이와 먹으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밥상

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딸은 하이 엄마, 하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왔어, 한마디 하고는 신문에

코를 박았다. 밥솥을 열어봤다. 솥이 없었다. 밥솥은 이미 깨끗이 비워져 물이 가득 담겨진 채 싱크대 안

에 놓여있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한 공기정도는 남았어야 하는데 거지 떼가 왔다 간 것처럼 바닥이

났다. 나는 날카롭게 눈을 뜨고 남편의 배를 바라봤다. 그의 배가 테이블 위로 불뚝 솟아 있었다. 눈치를

챘는지 남편은 허리를 펴며 억지로 배를 집어넣는다. 얼굴이 벌겋다. 자기가 되레 화난 얼굴을 한다. 정

말 못 말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