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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쫑파티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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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파티 / 이용우

 

지난 금요일 저녁을 마지막으로 순모임이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그 날 모임의 말미

에 회계보고가 있었는데, 십일조와 각종 행사비용을 지출하고도 재정이 남았다고

했다.

“남은 재정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다음 회기로 이월할까요?”

순장이신 유 집사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피메이커 곽 집사님이 오른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비명을 터뜨렸다.

“먹읍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모두들 희극배우처럼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산이라는 것은 그 회기 안에 모두 집행하는 게 원칙입니다. 안 그러면 다음 회기

예산이 왕창 줄어든다고요, 그러니까 남은 돈으로는 맛있는 거나 사먹자 이 말입니

다.”

곽 집사님이 자신의 비명을 그렇게 선명히 풀어놓아서야 모두들 폭소를 터트리며

맞장구를 쳤다.

“하하하, 거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씀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참으로 은혜가 차고 넘치는 의견이시네요.”

“호호호, 좋아요, 좋아요.”

“오우, 아이디어가 신선하세요. 과연 해피메이커다워요.”

“맞아, 우리 이런 기회에 밖에서도 한 번 만나자고.”

“그래요, 우리 순모임 쫑파티 합시다.”

이구동성으로 환영 일색이었다. 신앙생활에 무슨 방학이 있느냐며 시큰둥하던 최

집사님도 그 돌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는 듯 비시시 웃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허지만 재정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어서 번듯한 식당에

는 못갑니다. 화이브 가이 버거 가 교회근처 코스코 몰에 오픈했는데 맛도 좋고 질

도 좋아요, 어떻습니까?”

순장님의 제안에 모두들 좋습니다, 로 합창하여 즉석에서 날짜가 정해졌는데 순원

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는 날을 고르다보니 두 주 후의 월요일 저녁시간으로 낙착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다섯 가정, 열 한명(온누리교회의 출석 교인이 아니면서도 몇 년째 우

리 순모임에 참석하는 이 해정 자매가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는 대신 그린이가

따라붙었다)의 순원들이 드디어 훤히 밝은 낮 시간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잼보리

와 발랑카의 쇼핑몰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 세 식구가 7 시 정각에 쇼핑몰에 도착해서 햄버거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저 앞

쪽에서 먼저 온 몇 사람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순장님과 손 집사님 내외, 선글라

스가 잘 어울리는 최 집사님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자리를 찾자고 했다. 햄버거가게

에 들어갔는데 좌석도 적고 사람들도 많아서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햄버거가게가 바라다 보이는 파네라 빵집 옆의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몇 사람이 가서 햄버거와 음료수 따위를 주문해왔다. 빅맥보다도 훨씬 크고 두터운

더블버거를 손바닥으로 눌러가며 먹는 모습에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린이는 햄

버거 하나에 900 칼로리가 넘는다며 지방이 높은 내용물은 빼어 내고 먹었다.

사업상 남편 최 집사님과 함께 오지 못해 조금 늦게 도착한 미세스 최가 합류해서야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게 그렇듯이 남자들은 골프, 여성들은 미용이 화제

에 오른다. 그러나 남녀가 함께 말을 섞게 되면 건강이나 먹는 음식이 되기가 십중

팔구이다. 특별히 우리 순은 순장이신 유 집사님의 요리솜씨가 뛰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대화에 끌려가다보면 어느덧 요리강의를 경청하고 있게 된다. 지난 해 교회주

차장에서 치룬 바자회에서 천막 끝에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유성반점] 간판을 걸고

탕수육과 족발을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린 전례가 있다. 오늘의 화제도 골프와 피부

미용을 거쳐 드디어 냉면 요리법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었다.

“아니, 육수를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어요?”

“말로 설명해서 잘 될까요? 재료의 배합과 삶는 시간 따위가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

로 된 육수가 만들어지거든요.”

“제가 순장님 댁에 가서 핼퍼하면서 배우면 되잖아요?”

“아유, 우리 남편은 곁에서 거치적거리는 것 싫어해요, 요리는 자기 혼자 조용히 만

드는 걸 좋아한다고요.”

“어머, 나는 잘 배워서 멋진 냉면 디너에 우리 순원들을 초대하려고 하는데… 어떻

게 한 수 지도편달 안될까요?”

“그러지 마시고 일단 저희 집에서 냉면파티를 할 테니까 먼저 시식부터 해보시고 말

씀하시지요.”

“언제요? 말난 김에 당장하시지요?”

“네, 그러지요 뭐. 이번 주말은 독립기념일 연휴니까 그 다음 주 월요일이 좋겠네요.

그날 저녁 저희 집에 모두들 오세요, 진짜 냉면의 진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좋아요. 칠월 두 번째 월요일 맞지요?”

미세스 최의 한 수 지도 요청에 순장님과 부인이신 유 권사님이 주고받은 공방인데

그 어부지리로 냉면파티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럼 김치는 언제 담지?”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아내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맞아, 하는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몇 달 전부터 솜씨 좋은 순장님 모시고 합동으로 김치를

담가서 나눠먹자는 얘기를 했었다. 집이 넓은 손 집사님 댁에서 작업을 하기로 장소

까지 정해놓고도 날짜를 미루고 있는 사안이었다.

“음… 우선 냉면을 먼저 먹고… 김치를 담고… 에, 여하튼 두 주 후에 저희 집에서 냉

면 드시면서 확실한 날짜와 시간을 논의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날 햄버거 쫑파티가 끝나고 컬버프라자에 있는 맥도널드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까지 그 얘기는 계속되었다. 결론은 순장님 댁에서 냉면파티, 다음은 손 집

사님 네서 김치 담기, 마지막으로 육수 비법을 배운 최 집사님 댁에서 또 한 번의 냉

면파티를 두 주 간격으로 갖자고 확정을 지었다.

헤어지기 위해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누군가 즐거운 불평을 터뜨렸다.

“방학을 한 게 아니잖아, 순모임이 계속 되는걸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