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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졸업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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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홍순복

 

  그린이 7학년 때였다. 아침 출근길에 그린을 학교에 내려주고 가려면 늘 직장에 늦

었다. 회사의 상사에게 아이 픽업 때문에 15분 정도 늦는 다고 말은 했지만 나는 아

침마다 그린과 시간 싸움을 벌이곤 했다. 그린은 차에서 내릴 때는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나는 1분이 새롭기에 빨리빨리, 하고 소리치면 나는 충청도 아빠 딸이야, 하

며 눈을 지그시 감고 코는 벌름거리며 장난을 치곤했다. 딸은 아직 시간이 이르고

친구들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모션으로 차에서 내리곤

했다. 차문은 열어 놓은 채 가방을 아주 천천히 등에 메거나 차문을 닫지 않고 몇 걸

음 가다 히히 웃으며 돌아와 문 닫는 걸 잊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새 8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됐다. 딸이 초대장을 가지고 왔

다. 졸업식 전날 앞으로 아이가 다닐 North wood high에서 저녁 7시에 세리모니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중학교 때 한 번도 그린의 학교를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그곳에는 가겠다고 했다.

 그날이 되었다. 허둥대며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왔다. 천천히 가도 된다는 딸에게

남편은 일찍 가자고 했다.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온 딸에게 청바지를 입지, 했더

니 오늘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했다. 산자락 밑에 위치한 학교는 고등학교라기보

다 대학 캠퍼스 같아 보였다. 너무 일찍 왔다고 그린은 투덜댔다. 남편은 아이에게

어떤 약속이나 모임이라도 항상 제시간보다 일찍 가야 한다며 시간의 중요성을 가

르쳤다. 이다음에 대학 졸업 후 직장 인터뷰에도 절대 늦으면 안 된다는 너무 이른

주의까지 주었다.

 식장에 들어가 보니 졸업생들이 다 온 것이 아니라 상 받는 아이와 부모들만 초대

되었다. 남편은 딸보다 더 흥분한 듯 했다. 혼자 힘들게 키운 딸이 어느새 중학교를

졸업하고 키도 자신보다 큰 것이 대견스러운지 딸을 힘껏 안아주었다.

 세리모니가 시작되었다. 상을 받는 아이들은 앞에 나와 섰다. 어떤 아이들은 몇 번

씩 앞으로 나가 상을 받았다.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몇몇 친구들이 일

어섰다. 여자 아이는 단 한 명이였다. 그린은 가장 싫은 게 수학이라며 누가 그런 걸

만들어 머리 아프게 하냐고 7.8학년 내내 그랬다. 그래서 성적도 수학만 떨어져 선

생님이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린은 오바마 대통령의 싸인이 든 대통령상

을 받았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여자아이들은 대학생처럼

성숙하고 옷맵시도 어른스러웠다. 학부모들은 연신 사진을 찍고 박수치며 아이들의

수고를 치하했다.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전날 그린의 어릴 적 친구인 키리코도 엘에이에서 그

린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 지난밤 두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 까지 까

르르 거리며 오늘을 기다렸다. 그린의 외할아버지도 남편이 새벽에 엘에이에가 모

셔왔다. 91세 할아버지는 얼마 전 주신 용돈 말고도 100불 더 졸업 선물로 주셨다.

졸업 날에 입을 드레스도 미리 사두었다. 네이비불루 칼라에 흰색이 들어간 가는 어

깨끈이 있는 짧은 드레스였다. 그 옷에 맞는 흰색 구두도 샀다. 차려입고 나오니 제

법 예뻤다.

 학교 잔디밭이 졸업식장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접이용의자에 앉아있었다. 할아버

지는 건물 한켠의 피크닉 테이블에 모셨다. 남편은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린의

친구 키리코는 어디에 앉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졸업생들이 잔디밭의 간이 의자에

모두 참석하자 이내 식이 시작되었다. 식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두 학생들이

나와서 자작곡에 가사를 지어 붙인 노래를 기타반주에 맞춰 불렀다. 이제 우리는 떠

나가네.아, 때로는 지겨웠지. 그러나 이제 졸업을 할거야. 정말 졸업하는 거야. 졸업

이야 졸업 -능청스러운 코믹한 노래가사에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담임선생님

과 반 아이들이 함께 앉았다. 자기 선생님이 연단에서서 이름을 호명할 때 하나씩

일어났다. 그린이 내게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뒤를 둘

러보던 딸은 나와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한 참을 둘러보

니 반대쪽에서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법 높은 곳에 올라가있었다.

사진 촬영하기엔 명당자리 같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곡예사처럼 가는 파이프에

올라가 비디오를 찍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을 소개하며 이름을 부를

때엔 부모들이나 친지들이 야, 하며 함성을 질렀다.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운동회때 처럼 준비 땅, 하면 백 미터 달리기를 하던 기분으로 그린의 이름부를 때

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드디어 그린의 이름이 불리자 나도 야, 하고 소리쳤

다.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 허공에서 사라졌다. 머쓱했다. 남편과 친구아이가 옆에

있었으면 소리가 컸을 텐데 아쉬움속에 무사히 졸업식을 마쳤다. 그린에게 축하한

다고 하자 손가락 4개를 펴 보였다. 4년만 더 수고하라는 싸인 같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우리 일행은 Souplantation 식당으로 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

에 졸업선물이 화제가 되었다. 그린이 하이스클에선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하자 자기가 지금 갖고 싶은 것은 스케이보드라고 했다. 뭐라

고? 나는 안 돼, 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다른 것 없냐고 묻자 자기는 오로지 그

걸 타고 싶다고 했다. 위험한 건데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자. 자기는 남자아이들처럼

뛰고 넘고 재주를 부릴 생각은 없다고. 방학 동안에 안전한 곳에서 운동 삼아 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건 남자 아이들이나 타는 것이다 해도 그렇지 않다고 손을 흔들

었다. 자기 친구들도 다 탄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린은 덩치가 커서 넘어지

기라도 하면 다칠 것 같은데 끝까지 고집을 폈다. 허지만 어쩌나 딸을 당해 낼 재간

이 내겐 없으니…….. 이제 며칠 후면 그 스케이보드가 집으로 배달되어 올 것이다.

그린은 지금 그것을 손꼽아 기다리며 즐거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