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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음주운전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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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이용우

 

 지난 메모리얼데이 연휴 주일 아침에 교회를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얼바인 블러버

드가 차단되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예일 길을 따라 남쪽으로 두어 블록 더 내려가

브라이언에서 우회전하여 5번 프리웨이를 타고 교회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컬버

와 얼바인블러버드 부근의 몇 블록이 통제되고 있었다. 경찰차량도 여러 대가 늘어

서 있었다. 엘에이에서라면 흔히 목격하는 일이지만 얼바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

든 광경이었다.

 다음날, 그린이 인터넷에서 보았다며 그것이 교통사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컬버

와 얼바인블러버드 교차로에서 승용차와 에스유비 차량 간에 충돌사고가 일어났는

데 이 사고로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다 오던 열네 살 소녀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토

요일 늦은 밤에 일어난 사고였는데, 에스유비차량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해서 일어

난 사고라고 했다.

 연휴가 끝난 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얼바인블러버드와 컬버 교차로의 좌회전 차

선에 멈춰서 있다가, 참, 여기가 사고 난 지역이었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 주위를 둘

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컬버스트릿 남쪽으로 좌회전하려고 서 있는 내 오른쪽,

그러니까 그 네거리의 북동쪽 코너에 무수한 꽃다발과 불 밝힌 캔들이 인도 한 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침저녁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유심히 지켜보았다. 꽃과 캔들과 인

형 따위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인도 가장자리뿐만 아니라 신호등 기둥에도,

전기와 수도국의 철제박스에도 꽃과 편지와 사진 같은 것들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었다. 엘에이에 살 때 가끔씩 그런 사고지점을 지나치며 보아왔지만 그처럼 많은

애도의 물결이 답지한 모습은 보질 못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다이애

나 황태자비 마이클잭슨의 추모열기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다음 주일,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린과 함께 그 사고 지점에 가 보았다.

차에 앉아 곁눈질로 보았듯이 길모퉁이를 돌아가며 제법 넓은 잔디밭이 색색의 꽃

들과, 다양한 모양의 양초 병, 그리고 곰과 강아지인형 같은 것들로 빼꼭하게 들어

차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친구들이 쓴 추모의 글과 학교에서 특별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 수도국의 철제박스와 신호등의 기둥을 돌아가며 빈틈없이 붙여져 있었다.

-사랑해, 보고 싶어, 기억할게-

-사랑해 친구야, 넌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아있을 거야-

-I will miss you, rest in peace-

-I'm sorry for everything see you in heaven-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왜 네가 우리 곁을 떠나야 하는지-

-하니, 매일 나를 내려다보렴, 그러면 내가 얼마나 널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을 거

야-

-하나님은 좋으시겠다, 천사가 하나 더 생겨서-

죽은 소녀는 놀스우드 하이스쿨의 9학년 학생이었다. 신호등 기둥에 붙은 사진으로

보아 소녀는 아마도 학교의 육상선수였던 모양이었다. 육상트랙의 출발선에 허리를

굽힌 자세로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전방을 노려보는 눈매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또 다른 사진에는 치어리더 복장으로 율동을 하는 모습이며, 팀원들과 함께 어깨동

무를 하고 활짝 웃는 표정에서 성격이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참으로 아까운 소녀

였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아빠, 나 학교에 가면 저 걸이 생각날 거 같아. 아잉, 정말 슬프다. 사람들은 왜 술

먹고 운전해서 사람을 죽게 하는 거야.”

이제 며칠 후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녀가 다니던 놀스우드 하이스쿨로 진학할 그

린이 몹시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속상해했다.

“그래, 정말 술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모두 사라져야해.”

십여 년 전만해도 예사로 음주운전을 했던 나는 속으로 몹시 부끄러웠지만 시침 뚝

따고 그렇게 말했다.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 그리고 분노와 슬픔 따위가 뒤

섞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