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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사주팔자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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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 / 이용우

 

 -사주팔자를 보니까 니 평생에 일복이 터졌다더라―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어느 해 설날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선친께서 내 사주팔자를 보았다며 그렇게 말

했다.

아버지는 설 차례가 끝나면 연례행사처럼 가족들을 모아놓고 그 해의 운수를 보아

주는 취미가 있었다. 오래 사용하여 낡을 대로 낡은 토정비결이라는 책을 펼쳐놓고

아주 엄숙한 얼굴로 식구들의 그 해 운세를 보아주는 것이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

은 그 책이 정한 공식대로 각자의 생년월일을 빼고 더하여 도출된 숫자로 쪽수를 찾

아 운수를 보는 방식이었는데, 대개 여름에는 물을 조심하고 겨울에는 낙상을 경계

하라는 말이어서 우리 형제들은 서로 쳐다보며 실실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해만큼은 토정비결 운세풀이 뒤에 예의 사주팔자라는 것을 하

나 더 들고 나왔던 것이다. 아버지 자신이 이번 설을 앞두고 용하다는 역술인에게서

우리 칠남매의 평생 사주팔자를 뽑아왔다는 말이었다. 형제들의 사주팔자가 어땠는

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나만큼은 서두에 말한 대로 평생에 일복이 터졌다고 한 아버

지의 말을 지금껏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그 말끝에 한 마디 덧붙였다.

-일복이 터졌다는 건 세상에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좋은 사주다.-

 아버지는 말로는 좋은 사주라고하면서 입맛을 쩝, 다시고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평생 고생문이 열렸다, 는 말로 아버지의 표정을 읽었다. 아버지의 사주팔자론

이전에 이미 둘째 누나가 ‘얘, 너는 동짓달 토끼띠라서 고생이 막심할거야, 토끼가

눈 속에서 먹이를 찾으려니 얼마나 힘들겠니.’ 하는 말로 일찌감치 수긍할 수밖에

없는 운세를 예언한 일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의 ‘니 평생 일복이 터졌다’는

사주팔자를 그럴 줄 알았다는 심정으로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불행

인지 다행인지 그때 아버지가 말한 나의 사주팔자가 지금까지도 아주 성실하게 맞

아떨어지고 있다.

 이민햇수가 어지간히 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하나같이 미국생활이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살아갈수록 노하우가 생겨서 형편이 나아져야하는데 전혀 그

반대라는 것이다.

나 역시 2~3 년 전에 비해 외형상으로는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하향곡선을 그리는

몸에 할일은 자꾸 늘어나기만 해서 겉으로는 아닌척하면서 내심 헤쳐 갈 방도를 찾

느라 고심을 하고 있다.

 직장과의 거리관계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하루 9~10 시간이 고작인데, 그 중 두

세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하다보니 무엇보다도 시간을 효과적으로 안배하는 것이 내

가 걱정해야할 가장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빠듯한 일과에 애경사에도 참석하고, 피할 수 없는 모임에

얼굴도 내밀어야하고, 가끔 먼 곳에서 특별한 손님이라도 오면 이삼일 집밖으로 돌

아야 하니 계획했던 일정이 헝클어지는 일은 다반사이다.

이런 와중에 아내는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했다.

-신앙에 관한 문제는 모두 당신에게 일임하겠소.-

 결혼 전에 나는 아내에게 그런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뒤로 밀쳐두

고 열심히 가정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그린이도 함께했는데 숙제가 많다고 투덜

거려서 제외시켰다. 아내가 하자는 대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를 올

렸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십팔번이었다며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을 부르자면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을 불렀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 이 장모님의 애창곡이라며 부르자고 하면

두말없이 불렀다. 시작 기도를 시키면 시작 기도를 하고, 마침 기도를 시키면 마침

기도를 했다.

 시편부터 하루 일 장씩 읽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150일에 끝나려니 했는데 119 편

이 너무 길어서 160 일이 다 되어서 마쳤다.

“당신은 다른 운동을 못하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배 운동이라도 해야 되요. 자, 이렇

게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다리를 서로 딱 붙이고 곧게 쫙 펴서 위로 들어 올리는 거

야. 그리고 배에 힘이 가장 많이 받는 위치에서 다리를 멈추고…”

 예배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아내는 또 그렇게 운동을 시켰다. 아내의 생각이 틀

린 것은 아니지만 몸이 피곤하여 ‘다리를 딱 붙이고 곧게 쫙 펴서’ 들어 올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배가 힘을 가장 많이 받는 위치에서 들어 올린 다리를 멈추고

십초 이상 지탱하는 자세를 서른 번이나 반복하는 운동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편을 마치고 잠언으로 넘어간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내에게 불평

을 늘어놓았다.

“연초에 특새 했지, 토요일에 새벽기도 가지, 순모임 참석하지, 주일이면 꼬박꼬박

교회가지, 거기다 가정예배까지… 평생에 일복이 터졌다더니 그 말이 맞나벼.”

“누가 그랬어, 일복이 터졌다고?”

“사주팔자에.”

“뭐, 사주팔자?”

아내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을 게슴츠레 오므리더니 벌레 보

듯 째려보았다. 나는 벌레처럼 몸을 움츠렸다.

“당신, 팔자 바꾼다는 말 들어봤지? 이 순간부터 팔자 바꿔.”

“어떻게?”

“사주팔자에서 예수팔자로.”

“예수팔자로 바꾸면 일복이 더 터지잖아.”

“예수팔자 안에서의 일복은 정말로 복 받는 일이야, 조금만 참으면 당신 전업작가

되는 날이 곧 온다니까.”

“믿어도 될까? 그 말.”

“응, 믿으면 돼. 믿음대로 된다고 했잖아.”

“알았어, 믿을게. 이제 자자.”

“여보, 배 운동은 하고 자야지.”

 나는 슬금슬금 침대위로 올라가 두 다리를 헐렁하게 붙여서 엉거주춤 들어 올리고

는 하나, 둘, 셋, 하고 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