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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생업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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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 / 이용우

 

 “이 선생, 하루에 몇 마일이나 운전하시오?”

직장 동료인 홍 장로님이 일을 하다 말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사뭇 진지한 표

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네, 백 마일이 조금 넘습니다.”

“백 마일이 넘는다면… 킬로메타로는 얼마나 되는 거요?”

“백 칠십 킬로메타 쯤 됩니다.”

“백 칠십 킬로메타? 그러면 사십 킬로메타가 백리이니까 사백리가 넘잖아, 하아, 그

렇다면 춘천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는 말이네? 이 선생 참말로 대단하시오, 사

백 리를 운전해서 직장을 다닌다니… 참으로 생업이란 것이 중하고도 중한 일이요.

하아, 사백 리…”

홍 장로님은 말을 마치고도 몇 번이나 그렇게 하아, 사백 리…를 탄식처럼 흘렸다.

평소 백 여마일의 출퇴근길이 결코 짧은 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한국

식으로 ‘사 백 리’ 라는 말을 듣자 내가 매일 다니는 길이 정말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먼 거리를 달리다 보니 추돌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일은 예사이고, 비를 맞으며 출

발했지만 도착지점은 햇살이 쨍쨍하던지, 아니면 그 반대의 현상이 되기가 다반사

였다.

5번 프리웨이 북쪽방향을 컬버에서 진입하여 버뱅크의 부에노비스타에서 내리기까

지 항상 발목을 잡는 곳은 605프리웨이 부근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카풀레인이 끝

나는 벨리뷰까지의 20마일은 십여 분만에 내달리는데, 605프리웨이를 거쳐 10번과

101프리웨이가 갈라지는 다운타운 초입까지의 15마일에 1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다운타운을 벗어나 직장까지의 18마일은 그런대로 소통이 원활하여 30분정도 걸린

다. 이 계산법은 아침 6시 30분 이후에 출발하면 어김없이 적용되는 출근공식이다.

퇴근 역시 직장에서 오후 4시 이후에 떠나면 출근 뺨치는 트레픽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방

법을 쓰게 되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두 시간 늦게 퇴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

면 출퇴근 모두 1시간 10분 내외로 해결이 되고, 아침과 저녁으로 각각 2 시간의 프

리타임이 생긴다.

아침에는 회사 근처의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집필중인 글을 점검하든가 아니

면 새로운 글을 구상하는 일로 2시간의 자유를 즐긴다. 직장을 마친 후의 저녁시간

에는 사무실 소파에 누워 피로를 풀기도하고 책을 읽기도하며 러시아워가 지나가기

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나는 아침 5시 30분에 집을 나서 저녁 8시 가까워서야 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내가 8년째 몸담고 있는 직장은 영화사의 의뢰를 받아 특수의상을 제작하는 회사

이다. 헐리웃의 영화사들과 관계하는 사업체들은 대개가 버뱅크와 노스헐리웃에 몰

려있다. 이 말은 집 가까이에는 나를 필요로하는 직장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멀

다는 불평은 고사하고 요즘 같은 불황에 안짤리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할 터이

다.

 사실 나에게 있어 먼 거리를 운전한다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욱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개스비와 23만마일을 넘게 주행한

노후차량 문제이다. 전에 갤런당 2불 60~70센트 하던 개스가격이 지금은 4불 30센

트를 웃돌고 있다. 한 달 300불 정도 사용하던 개스비를 요즈음은 500불가깝게 지

출하고 있다. 만일 개스가 갤런당 5불이 넘어간다면 메트로링크 이용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형 승용차가 어제부로 23만마일을 넘어섰다.

아직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지만 매일 먼 길을 달려야하는데다가 마일리지가 높으

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아내가 차를 바꿔주겠다고 2년짜리 적금을 들었는

데 만기일이 내년 7월이다. 이번에는 꼭 현대 쏘나타를 사리라고 차종도 이미 정해

두었다.

 직장동료 홍 장로님의 탄식처럼 ‘하아, 사백리’ 출근길이 아무리 멀다 해도 너끈히

당해낼 수 있다. 개스비가 갤런당 3불 이하로 떨어지고, 내 고물차가 내년 7월까지

만 무사히 굴러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