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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솜사탕추억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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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사탕추억 / 홍순복

 

 굿 나이트를 하지 않은 그린의 방문이 굳게 닫혀있다. 구찌 녀석은 내쫒긴 것인지

미처 못 들어갔는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 노크를 할까

하다 안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방에 없었다. 내가 부엌일을 할 때 이층으로 먼저

올라갔는데 딸과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고 방문을 굳게 닫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런데 문을 닫고 있어도 서로 이야기 하는 소리가 약간은 들리는데 오늘은

전혀 고요하기만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아직 두 사람은 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두드리니 문을 연

남편과 딸의 표정이 무슨 음모를 꾸미다 들킨 사람들처럼 당황한 표정이었다. 남편

이 그린이가 방을 치우지 않았다고 야단을 쳤는지, 아니면 서로 싫은 소리를 주고받

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나만 빼고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린이하고 조금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

 남편이 그렇게 말을 해서 나는 방문을 닫고 내방으로 왔다. 얼마 후 그가 그린이 방

에서 돌아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 응, 사실 이번 주말이 어머니날이잖아, 그린이가 당신에게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

다는 거야. 무엇을 해야 좋을지 생각하다 유니버샬스트듀오에 가는 걸로 정했대.'

 남편은 그렇게 말하며 유니버샬스튜드오 앞에 가기 까지는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

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유니버샬스토듀오에 가보고 싶다고 한말을 그린이

가 잊지 않고 있다가이번 어머니날 선물로 그 아이디어를 낸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놀이터에 간다는 즐거움보다는 일인당 74불인 티켓 값이 세장이면 200불이 넘

는데다가 점심도 사먹고 개스비까지 하면 3,4백 불은 족히 들겠다는 생각에 별로 기

쁘지가 않았다. 내가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하면 그린이는 인생은 짧다고 소리칠

게 분명하다.  전에도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 나이가 오십이 넘었으니 팔십까지

산다고 쳐도 얼마나 남았겠냐고. 일만하다 간다고 핀잔을 준적이 있다. 열세 살짜리

딸아이가 인생이 어쩌고 할 때면 웃음도 나지만 그래도 아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

다.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일찍 일어난 남편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회사동료들에게

유니버샬스튜디오에 간다고 자랑했다는 말을 했는데 무심코 그 말을 그린이가 듣고

말았다. 그린은 엄마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다며 징징거렸다.

" 그린아, 운전은 엄마가 하거든 어차피 길을 알아야 하니까 끝까지 비밀로 할 수 는

없어. 어쨌든 땡큐야."

나는 그렇게 그린이를 달래고 김밥을 쌌다.

 아주 오래전 먼저 이민 온 아버지가 유니버샬스튜디오에 다녀왔다고 편지와 사진

을 보내왔었다. 영화광 이였던 아버지는 그곳이 그렇게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유니

버샬스튜디오는 늘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다행히 날씨가 서늘해서 걸어 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도보기를 싫어하는 나

는 딸아이가 가자고 하는 대로 갔다. 처음 들어간 곳이 할로인 장소였다. 나는 남편

과 그린과 꼭 붙어서 천천히 좁은 길을 지나갔다. 거미줄이 쳐진 음침한 곳에 인형

이 아닌 진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직 사람들이 많지는 않

았지만 각지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아침을 일찍 먹어서인지 12시가 되지 않았는데

배가 조금 출출했다. 치로스와 핑크빛 솜사탕을 샀다. 그린이 솜사탕을 혼자 먹겠다

는 걸 남편과 나는 장난치듯 한 움큼씩 빼앗아 먹었다. 그린이와 남편은 이미 두서

너 번 왔었기에 어떤 것이 재미난 놀이기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심장이 약한 편

이라 놀이기구는 늘 피하고 살았다. 어릴 적 그네 타기와 널뛰기도 올라갈 때는 괜

찮은데 내려올 때가 무서웠다.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머미라이드는 꼭 타야한다고

했다. 핸드백까지 임시 사물함에 넣어두고 타야했다. 나는 가운데에 앉고 양쪽으로

는 남편과 딸이 탔다. 있는 힘을 다해 손잡이를 붙들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가더니

갑자기 언덕을 오르다가 내리막에서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기구는 옆

으로 돌아가며 나를 털어내 버릴 것 같이 격렬하게 흔들어 댔다. 손을 놓으면 몸이

튕겨져 나가 죽을 것 만 같았다. 순간 머미라이드를 탄 것이 내 생애 최고의 실수라

고 후회하며 죽을힘을 다해 입을 앙다물고 눈은 있는 대로 꽉 감고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놀이기구에서 내린 나는 어지럽고 구토증이 일었다. 몸이 쓰러질

것 같이 다리가 후들거리고 휘청거렸다. 돈 내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남편과

딸은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속은 것 같

아 화가 났다.

" 이렇게 무서운데 말하지 안했어?"

" 당신 더 나이 들면 언제 이런 거 타보겠어."

 나는 누가 큰돈을 준 다해도 다시는 탈 수 없을 것이다. 악몽을 꾼 것 같았다.그런

데 가장 무서웠던 순간의 장면을 직원들은 컴퓨터로 사진을 찍어 놓고 사가라고 했

다. 그 모습은 차마 볼 수없는 사진이었다. 그 순간 신경이 곤두세워서 그런지 머리

가 너무 아팠다. 잠시 쉰 다음 우리는 영화를 촬영하는 장소로 버스 투어를 했다. 진

짜 사람들이 관광객을 위해 연기를 했다. 비행기 추락한 곳도 정말 같고 화재 차에

도 불이 붙고 있었다. 지진이 나는 장면은 건물이 무너지고 수도관이 파열되어 물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실제 상황처럼 리얼했다. 3D안경을 쓰고 본 킹콩은 재

미있었다. 정말 내게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본 것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은 Water World 였다. 무서운 해적들의 싸움에 홍일점으로 출연한 금발여자의 곡예

는 대단했다.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가 끝난 후 온몸이 흠뻑 젖

은 출연진들과 사진촬영도 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갖가지 프로그램을 관람하고 즐기며 그때

아버지도 똑같은 장면을 보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잠시 감상에 젖기도 했다. 먼 훗날

그린이도 성인이 되어 가정을 갖는다면 제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겠지,

그러면 분명 오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덩치 큰 엄마가 머미라이드를 타고 무서워하

던 모습도 떠올리겠지. 그리고 우리처럼 아이의 솜사탕을 빼앗아 먹으며 즐거워 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