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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창-크리스천 헤도니즘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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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헤도니즘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 지난 주일(10월 14일) 자

신이 시무하는 베들레헴 침례교회에서 의미심장한 설교를 했습니다. 자신이 최근

신학적으로 전개한 ‘크리스천 헤도니즘’(Christian Hedonism)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

리가 산발하자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고 변증하는 설교를 한 것입니다.

크리스천 헤도니즘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크리스천 쾌락주의입니다. 하지만 존

파이퍼 목사의 크리스천 쾌락주의는 고통을 피하고 오직 쾌락만을 유일한 선으로

좇던 헬레니즘 시대의 쾌락주의가 아닙니다. 존 파이퍼 목사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복음의 본질인데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기독교 내

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데 따르는 기쁨의 우선성이 결여되어 가고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크리스천 쾌락주의는 복음만을 천착해온 66세 된 세계적인 신학자

가 오랜 신앙의 여정 끝에 발견한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의 정수임이 분명해 보입

니다. 존 파이퍼 목사의 크리스천 쾌락주의의 핵심은 예수님이 언제 가장 기쁨으로

충만한지와 인간이 언제 가장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 정리에 있

는 것 같습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은 인간으로부터 가장 많이 빼앗길 때 가장 기

뻐하며, 인간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공급 받을 때 가장 기쁠 수 있습니다. 저

는 이것이 은혜 신학의 중요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적인 생각에 갇힌 사람들

은 예수님을 요구하는 분으로 여깁니다. 그리하여 율법적인 생각은 무언가를 더 행

함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예수님이 요구할 만한 것

이 하나도 없을 만큼 파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육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공급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오직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끝없이 먹음으로써

만 살아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완전히 먹이기 위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섬김의 왕이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쁨이 잘 나와 있습니다. “너의 하나

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

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

며 기뻐하시리라.”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의 본질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

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먹고, 예수님은 자신을 먹도록 내어주시는 구원

자이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는 종교적인 행위나 더 많은 선행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지요. 성

도의 마음은 자신을 구원할 하늘의 보아스에게 나아가는 이방 여인 룻의 마음이면

족하겠네요.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룻기 2:13)

은혜 입기를 원하는 룻의 마음은 룻기 2장 12절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의 날개 아래

에 보호를 받으러 나아가는 성도의 마음이며, 예수님을 먹고 그 아래에 쉬기 원하는

마음을 주님은 가장 기뻐하시고 자신을 섬기는 최고의 예배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으로 상징되는 보아스는 어떻게 하십니까.

룻기 3장 18절입니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보아

스가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앉아 있다는 것은 승리와 안

식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그가 성취하신 구원 아래 안식하기를

원하시며, 그 안식 가운데서 주님이 친히 원수와 죄를 멸하신 열매를 우리가 누리기

를 원하십니다.

돌아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기쁨으로 가득 찬 잔치를 베풀어도 큰 아들처럼 잔치

를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많이 아버지를 섬겼는

지 아느냐”고 반문하는 큰 아들처럼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는 것을 낙으로 삼지 않고

아직도 섬김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실천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성도의 기쁨은 충만해집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먹고 보고 알아가지 않고, 행위에 치우치고 기적과 표적을 좇

다보면 신앙의 뿌리를 잃고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모든 성경

이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룻기 마지막 장의 보아스의 족보도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더해줍니다.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기

4:21~23)를 히브리어 뜻으로 풀면 이런 의미가 됩니다. “능력이 충만한 예수님께서

(보아스) 모든 부요와 공급하심으로(이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을(다윗) 섬기신

다.(오벳)”

존 파이퍼 목사는 아직 정정한 66세이지만 올해 교회를 내려놓고 새로운 여정을 떠

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땅에서 저의 마지막 사명은 천국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분을 더욱 알아가

는 것입니다.”

이 같은 크리스천 헤도니즘이 은혜의 삶을 사는 성도들을 더욱 열매 맺게 하고, 고

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참된 힘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