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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남편의 반바지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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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반바지/ 홍순복

 

 지난여름 코스코에서 남성용 반바지를 하나 샀다. 의류코너로 지나다가 베이지색

반바지가 눈길을 끌어서 남편에게 입히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고 왔다. 그

런데 오면서 생각하니 남편이 반바지 입은 것을 못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정상적이지 않은 다리 때문에 반바지를 입지 않는 것일 게다. 그런 그가 입

을까 염려가 되었다.

 피트니스에 가지 않는 날은 가끔씩 그린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이런저런 이야

기를 하며 친구처럼 낄낄대기도 한다. 어려운 단어를 빼고는 우리말을 하고 알아듣

는 딸아이와 같은 언어로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야기 도중 불쑥 그린은 아빠 다리가 왜 그렇게 된 줄 아냐고 내게 물어왔다. 새삼

스럽게 그걸 왜 지금 내게 묻는 건지 의아했다. 아마도 제 딴엔 아빠에 대한 나의 생

각을 알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남편은 내게 한 번도 그의 불편한 다리에 대해 언급

한 적이 없어 그저 소아마비를 앓았구나, 로만 짐작해 왔다. 나는 언젠가 인터넷으

로 찾아본 소아마비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려서 유행성 바이러스 균이 1,2살 아이들

에게 나타나 다리부분에 마비가 와서 평생 걷지도 못하거나 다리를 절며 살게 되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빠가 아기일

때 사고로 다쳐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라고 일축했지만 딸아이는 자

기가 궁금해서 물은 적 있는데 아빠가 그렇게 이야기 해줬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되어서 그는 내게 한 가지 불만을 지적했다. 무엇일까 조금은

긴장하고 들었다. 의외로 나의 걸음걸이였다. 좀 당당하게 찬바람이 나도록 미국 커

리어 우먼처럼 똑 바로 걸으라는 거였다. 내 걸음이 어떠냐고 했더니 흐느적거린다

는 것이다. 똑 바로 걸었으면 하는 것은 본인인데 멀쩡한 내게 명령하는 그가 의아

스럽게 여겨졌고 기분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맞벌이 부부이고 서로가 장거리 운전을 하기에 집안일과 딸은 내가 도맡아 한다. 그

러나 빨래 개는 것만은 그의 담당이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바쁘다 보니 후다닥 개

어 버린다. 그는 다림질이 필요 없게 예쁘게 개킨다.

결혼 전 그를 만나 문학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모

르고 많은 대화를 했다. 그러나 돌아서 가는 그의 다리 저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걸

렸다. 나이든 동생의 새 출발을 목숨 걸고 반대 하던 언니도 있었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려느냐고 반대가 심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휠체어

신세를 지면 어쩌려고 편치 않은 삶을 자초하느냐는 것이었다. 별별 이야기를 다 했

다. 반대의 동기가 나를 위한 것이긴 했지만 너무 지나친 간섭이었다. 한국적 체면

과 타인을 의식하는 우리네 의식일거다. 겉보다 속이 여린 나는 그래도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며 작정 기도를 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마켓에 가서 장을 볼 때면 아는 이들을 만날까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어느 때는 그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차안에 있었으

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친정식구들이 모일 때엔 그의 다리에 시선을 두는 것 같

아 많이 불편했다. 도대체 다리가 어떻게 생긴 걸까 하는 눈빛들 같았다. 꼭 실내화

를 신어야 되고 그래야 발육이 덜된 그의 짧은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고 한

다. 실내화를 신어야 그나마 자신의 핸디캡을 커버 할 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난

늘 어느 집이든 방문할 때는 실내화부터 찾아 그에게 내민다.

신발의 앞모양에 따라 그의 저는 모습이 더 하고 덜 하다는 것을 알았다. 앞이 뾰족

한 것 보다는 뭉툭한 것이 훨씬 커버를 잘 했다. 그리고 바지 길이도 짧으면 그의 아

픈 다리가 더욱 드러나 보였다. 바지 길이도 조금 긴 것과 바지통이 약간 넓은 것이

나아보였다.

그의 짧은 오른쪽 신발의 굽을 높이거나 해서 보기도 좋고 척추에 도움도 주자는 조

언을 수없이 했었다. 그때마다 해야지, 하면서도 몇 십 년 살아온 그대로 편한지 아

직까지 발 닥터에게 가지를 않는다. 집안에서도 걷는 소리가 일정치 않아 귀에 거슬

린다. 피곤한 날이나 추운 날에는 걷는 다리모양이 허공을 휘젓는 듯하다.

과체중인 그의 척추운동을 위해 의사는 수영을 권유했다. 하지만 자신의 흉한 모습

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그런지 수영장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오랜 잔

소리의 결과로 잠들기 전 침대위에서 양쪽 발을 들어 올려서 허공에 멈추는 다리운

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배가 당긴다고 하더니 이제는 불평 없이 곧잘 한다. 물렁하

던 배가 조금은 단단해졌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의 저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신발도 편한 것으로 사서

신게 했고 함께 걸을 때는 내 손을 잡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 많이 걸을 때는 도움이

된다.

어느 날 그가 혼자 말로 반바지 한 번 입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얼른 코스코

에서 산 반바지를 꺼내어 그에게 내밀며 입어보라고 했다. 그는 괜찮을까? 하며 멋

쩍은 얼굴로 반바지를 입었다.

" 정말 시원하네, 반바지 입는 것 이번이 처음이야."

그는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곤 긴 거울 앞에서 폼도 잡아보고 자신의 대 변신

을 자랑스러운 듯 오랫동안 바라봤다. 왼쪽 다리를 많이 사용해서인지 보통의 다리

둘레보다 굵었다. 반면 오른쪽은 가늘고 차갑다. 그 다리를 만져보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두 손으로 한참 감싸고 있어야 서서히 온기가 생긴다. 집안에서는 한낮에

도 반바지를 입지만 밖에 나갈 때에는 밖이 어둑해져야만 나갔다. 해가 지면 반바지

를 입은 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도 하고, 언젠가 한번은 옆집 죠지네를 그 차림

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동네 트레일을 걸을 때는 언제나 아픈 다리가 바닥이 높은 곳으로 가도록 걷는다.

내 왼손을 잡았다가 반대쪽으로 가서 오른손을 잡고 걷는 등 길바닥의 높이에 따라

자기편한대로 옮겨 다니며 걸었다. 이제는 나도 그가 나의 어느 편에 서서 걸어야

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동네길 을 걷거나 직장에서 돌아오는 그를

마중 나가면 이제는 자연스레 그가 편한 쪽을 찾아 설 수 있다. 그래도 어느 때 깜박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차 하고 생각이 나서 얼른 반대편으로 옮겨 가면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씩 웃는다.

날씨가 점차 더워진다. 이제 다시 반바지를 입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겨우내 농

속 깊이 잠자고 있는 반바지를 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