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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가족 일기장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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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일기장/ 이 용우

 

 1 년여 전부터 ‘가족 일기장’을 써 오고 있다. 개인의 은밀한 신상기록으로서의 일

기가 아니라, 가족들이 그날 있었던 일을 행위 중심으로 서술함으로서 가족화합에

도움이 되고, 더불어 특별한 재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동안 써

온 ‘가족 일기장’에서 몇 대목을 옮겨본다.

(2009년 12월 7일 밤 9시 10분)

 순복이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베델 교회에서 열리는 ‘어머니 교실’에 간다.

저녁 6시에 시작하여 10시까지 4시간의 강행군 세미나이다. 내가 앞으로 나흘 동안

그린과 나의 저녁 걱정은 말고 어머니교실이나 열심히 다니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시큰둥했으나 결국은 가겠다고 동의를 했다. 직장 다니랴, 주부노릇 하랴, 엄마노릇

하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어머니 학교를 가는 것이다.

오늘 Old Timer 모임을 뿌리치고 집으로 와서 그린이와 찬밥을 볶아먹고, 설거지하

고, 내일 아침 밥쌀 씻어서 밥솥에 앉혀놓고 일기를 쓴다. 방금 전에 친구들이 내가

오지 않는다고 전화를 해서는 ‘망년회 한 번 더 하기로 했으니 그때는 네가 사라’ 며

퉁박을 준다.

(2010년 1월 2일)

 오늘 오전에 남편과 함께 장재언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

다.

엘에이 형님 댁에 가려고 했는데 고모부가 일하신다고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엄마 생신(87세)이라 모두 엄마 집에서 모였다. 배 한 상자와 집에서 만든 쿠키를 들

고 갔다.

남편이 조카 세롬, 슬기, 한별, 인표에게 50불씩 주었다. 만두를 빚어 함께 식사했

다.

엄마가 좋으신가 보다. 자꾸 우리를 부르셨다. 엄마가 덕담을 하시고 우리 형제들은

합창으로 성가를 불렀다. 좋은 시간이었다.

 순태가 우리를 자기 집에 초대한다고 말했다.

순철이 그린이 주라고 슬며시 50불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2010년 3월 28일)

 부활절을 한 주일 앞둔 오늘 우리 가족은 두 끼 금식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2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기위해 차를 탔는데 그린이가 배가고파 죽겠다

고 해서 그럼 그린이만 아침 한 끼 거른 것으로 금식을 마치자 하여 교회 근처에 있

는 In-n-out으로 가서 치즈버거 5개를 사가지고 어머니 댁으로 갔다.

그 시간에는 큰 동서가 어머니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라 우리도 같이 또 예배

를 드리고 사가지고 간 치즈버거를 드렸다.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어머니 댁을 나온 우리 식구는 우드브릿지 몰에 있는 2불짜

리 극장에서 샌드라블락이 올 해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The Blind Side]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지금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이 일기 밑에, 그린이가 영화 관람 중에 스낵 사먹으러 나간다고 해서 티켓 한 장

을 뜯어주었는데 잊어버리고 와서 티켓이 두 장 남음, 이라고 쓴 메모 옆에 우드브

릿지 극장의 영화티켓 두 장과 크레딧카드로 지불된 인엔아웃의 10불 82센트짜리

영수증이 나란히 붙여져 있다.

매 번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물가를 짐작해보는 재미로 영수증을 붙여두

는 것이다>

(2011년 1월 9일)

Hi, Since the last time I wrote I've gotten a new mattress. I've been using the same

ugly one for twelve years. My new one is really cool and soft. My parents want to

use it (TOO BAD). I went to an All Time Low concert on 11/12/10, and it was one

of the best days of my life. They're my favorite band. I also went to a Justin Bieber

concert on 10/27/10. It was amazing. I love both of them. School is doing good,

and I have an A- in math. K my hand is cramping so I'm going to go. Byee!!! –

greenlee xx

P.S: My gifted mattress is from cousin Moonhee

(그린이가 일기 쓰는 것을 싫어해서 어쩔 수없이 저가 필요한 것을 사달라고 할 때,

‘밀린 일기를 쓰면‘ 이라는 조건으로 겨우 위와 같이,

 -12년이나 쓴 매트리스를 새것으로 바꿨더니 너무 좋다 / 11월 12일, 올타임로 밴드

의 콘서트에 갔다,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 10월 27일 져스틴 비버 공연은 정말 놀

라웠다. / 학교 성적도 좋다, 수학을 A- 받았다. 필기를 많이 해서 손가락에 쥐가 나

려고 한다, 안녕!!!

이렇게 두세 달치 일기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다.)

 지난 연말의 샌프란시스코 여행일지는 깨알 같은 글씨로 4쪽이나 차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동안에 가스 넣고, 음식 먹고, 구경하고, 화장실 가고, 쇼핑

한 장소와 지명은 물론, 호텔에서 손님의 차에도 주차비로 하루에 20불씩 청구한다

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을 해놓았다. 그 영수증들도 모두 붙여 놓았다.

지난 해 5월 15일(토)에 있었던 ‘여리고 걷기’ 일기장에는 교회에서 촬영해 준 가족

사진도 붙여져 있다. 교회 주보의 ‘말씀노트’에 기록한 주일 설교 요약본도 거의 빠

짐없이 가족 일기장에 보관 된다.

LA 인근의 캠프장 약도, 골동품 시장 정보, 대학입학 에세이 쓰는 요령과 사람은 무

엇으로 사나, 진정한 가피, 같은 신문 기사와 칼럼들도 붙여져 있다.

함께 나누는 세상 창립 대회 순서지도 있고, 시에라비스타 중학교에서 보내온 그린

이 성적표도 가족 일기장 속에 갈무리 되어 있다.

 그러니까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거나 유익 하겠다 싶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필기하거나 오려 붙이는 것이 우리의 ‘가족 일기장’ 이다.

 가끔 머리가 무겁던지 몸이 피곤할 때, 가족 일기장 아무 곳이나 슬쩍 젖히고 이삼

분만 들여다보면 대개는 기분전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