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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챨리의 귀향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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챨리의 귀향/ 홍순복

 

 제프가 우리 회사에 처음 온 것은 10 년 전쯤이다. 그의 나이 21살 이였다. 어린 티

가 물씬 났지만 그의 말투는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달변가였다. 허나 어딘지

모르게 시건방진 구석이 있어 회사직원들이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묻지도 않

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16살에 아들을 낳아다는 등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수선스럽게 떠들어 됐다.

 

 어느 날 제프는 새 직원이 왔다며 책상마다 돌면서 인사를 시켰다. 내게 데리고 온

사람은 키가 작고 아직 소년티가 나는 그와 같은 또래인 어린 남자였다. 제프는 내

게 말했다.

" 하이 순, 내 여자 친구 챨리야 ."

뭐라고 했어? 라고 내가 되묻자 제프는 낄낄대며 웃기만 했다. 어떻게 남자를 여자

라고 말하는지 의아해 했다.

" 하이 순, 나이스미츄."

 챨리는 여자처럼 가냘픈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묘한 느낌을

감추며 찰리의 손을 잡았다. 챨리의 손은 계집아이처럼 작고 힘이 없었다.

 

 제프는 본인 스스로 자신이 게이라고 말했다. 동성애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

려 자랑스러운 듯 당당히 우리에게 그의 신분을 노출시켰다. 제프의 파트너인 찰리

는 귀여운 맛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흥얼대는 그의 노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

성의 음성으로 감미롭게 들려졌다. 빈 소년 합창단원 하나가 곁에 와서 노래를 부른

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챨리의 걸음걸이는 소녀처럼 연약하게 흐느적거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지나갔다. 키가 비슷한 그들은 같은 셔츠를 바꿔 입

기도 해서 누가 누군지 혼동을 일으키게 했다.

 

가끔은 그들도 다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찰리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계집아이처럼

턱을 괴고 키친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갑자기 그는 우박 같

은 눈물을 쏟았다. 제프가 본인을 너무 힘들게 한다고 했다. 명령조로 매일 매일 들

볶으며, 이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면 또 트집을 잡아 자꾸 주눅이 든다고 했다.

나는 그 녀석을 떼어 버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뱃속으로 꾹 눌렀다.

 

 옆의 동료가 말했다. 게이도 두 종류라고 제프같이 시건방진 녀석과 찰리같이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찰리가 다른 직장을 구해 나가며 우리 회

사를 그만두었다. 그런 챨리는 제프를 만나러 회사에 오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모습

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제프는 챨리와 헤어졌다고 했다.

 

제프는 회사에 오는 남자 방문객만 보아도 야릇한 눈짓을 하며 저 사람 너무 멋지지

않으냐고 내게 묻곤 했다. 때로는 털이 숲을 이룬 그의 배를 들어 보이며 내 앞에서

'오! 섹시섹시' 를 연발하며 최대한으로 흔들며 막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내

칠 수도 없이 웃어 넘겨버렸다.

 

 사장이 제프를 점점 신임하고 있었다. 밥 먹고 컴퓨터만 해 비서처럼 그의 필요를

채워주니 그가 게이든 뭐든 상관없이 유태인 사장은 제프를 잘 이용하고 있었다. 그

의 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회사를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서 나오는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회사에 유익을 준다며 과감히 시스템을 바꾸는 작

업을 했다. 그 와중에 동료직원 4명이 동시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 덕분에 나와

나의 상사는 그 일을 하느라고 혼쭐이 났다.

 

 겨울이 왔다. 어느 날 소식이 없던 찰리가 우리 회사에 들렀다. 챨리는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남성미가 철철 흐르는 작은 체구가 바디 빌더라도 했는지 티셔츠를 입

은 그의 팔뚝이 울퉁불퉁 근육질이 되어있었다. 멋지다고 하니 고맙다며 마지막 인

사하러 왔다고 했다. 그는 늘 하던 귀걸이도 하지 않고 머리는 무스를 발라 야성미

가 넘쳤다. 챨리는 고향 미네소타로 간다며 다시는 캘리포니아에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내게 살짝 귀엣 말로 소곤댔다. 고향에 갔다가 고교동창 여자아이를 다

시 만났다며 아마도 그녀가 자기의 여자 친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며 챨리는 자

기가 정말 남자처럼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래 챨리, 넌 정말 멋진 남자야 ."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잘 가란 말로 그리고 남자로 다시 태어나 귀향하는

아들 같은 찰리를 힘주어 포옹해줬다. 챨리도 전 같지 않게 힘차게 나를 안았다.

 

201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