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뉴 익스첸지
2014.01.06상세 본문
뉴 익스첸지
글/ 이 용우
지난 일요일 오후, 스펙트럼에서 ‘the help’라는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온마
켓에 들렀다. 과일 따위 소소한 것 몇 가지를 사가지고 나와서 주차된 차를 뒤로 빼
는데(아내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본의 아니게 큰소리를 내게 되었다.
“아니, 왜 그쪽으로 빼는 거야?”
나는 아내가 으래 차의 꽁무니를 왼쪽으로 틀며 후진을 하려니 하고 그쪽에 방해물
이 없는지를 살피는데 차가 정반대로 휙, 돌아가자 그만 깜짝 놀랐던 것이다.
“이쪽으로 빼면 어때서? 운전하는 사람 맘이지, 괜히 큰소리야.”
“뭐, 운전하는 사람 맘? 무슨 맘이 그래, 왼쪽으로 빼서 우회전하면 저 중국식당 옆
길로 나갈 수 있잖아. 이렇게 반대로 빼면 돌아가야 하잖아.”
“조금 돌아가면 어때? 나는 중국식당 옆길로 안다녀, 저 위쪽 주유소 옆길이 좋아.
나는 맨날 그렇게 다녔어. 뭐가 잘못이야,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데.”
“허, 참, 기가 막혀서… 지름길을 두고 돌아가면서 되래 큰소리를 치기는, 칫.”
그때 우리의 공방을 지켜보던 뒷자리의 그린이 입을 열었다.
“아빠, 아무도 wrong 은 없어, 다 right 이야. 엄마 잘한 거야.”
나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잠시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린이 딱하
다는 느낌을 실어서 한 마디 더했다.
“아빠도 뉴 익스첸지에 가야 되. 그러면 다 right 이라는 걸 알 수 있어.”
내가 그건 또 무슨 말이니, 하는 얼굴을 하자 성질 급한 아내가 참지 못하고 설명을
했다.
“여보, 그린이 말이 뭐냐 하면,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야, 두 주전에
우리 교회에서 뉴익스첸지 라는 컨퍼런스가 있었잖아? 그린이가 거기서 그 말을 듣
고 감명을 받았나봐.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위가 옳지 않아보여도 그것이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를 뿐이라 그 소리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
아내는 마지막 말인 ‘다를 뿐!’ 에 특별히 힘을 주며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의기양양
하게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서 힐끗 쳐다보니 아내는 당신이 틀렸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아내의 그 표정과 웃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
다.
아내와 나는 성격이 서로 정 반대이다. 큰 것에서가 아니라 아주 작고 소소한 점에
서 그렇다. 우선 매일 입고 신는 옷과 신발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당장 걸치고 있는
입성 이외에는 재킷에서부터 양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옷장이나 장롱 속에 들어가
있는 반면에, 아내의 것들은 간이 옷걸이와 의자 등받이, 그리고 컴퓨터박스 위에
알록달록 걸리고 쌓여있다.
신발도 나는 당장 신는 작업화 한 켤레에 슬리퍼가 고작이다. 그런데 아내의 것은
구두, 운동화, 슬리퍼가 종류별로 두세 가지씩 나와 있어서 현관에 발 딛을 틈이 없
을 지경이다. 옷이나 신발이나 아내의 것들 외에 그린이 몫도 그만큼이나 더 있으니
얼마나 복잡할 것인가.
나는 컵이나 주방용 가위가 이층에 올라와 있기라도 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들고 내
려가는데, 아내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으면 며칠이고 그냥 내버려두기 일쑤이다. 그
린이 물론 아이라서 그렇겠지만 이것도 역시 제 엄마와 똑같다.
가끔 화장실 바닥에 엉켜있는 머리카락들을 화장지로 닦아내기라도 하면, 아내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핀잔을 한다.
“그냥 내버려둬, 청소할 때 한꺼번에 하면 되지 그런다고 얼마나 깨끗해지겠어.”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럴까, 당장 눈에 뜨이니까 보기 싫어서 그러는 것인데 칭
찬은 못할망정 볼 때마다 그렇게 면박을 준다. 몰론 자기로서는 미안한 마음에 그렇
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런다고 그것을 훔쳐내야 속이 시원한 나로서는 그냥 보아
넘길 리 만무한 일이었다.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편치 않은 얼굴로 슬그머니 돌아보니 그린은 리시버
를 귀에 꽂은 채 음악에 빠져있다. 나는 왜 그래, 하는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킥킥 웃더니 이실직고를 했다.
“여보, 나 왼쪽으로 빼면서는 후진 못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오른쪽으로 밖에는 안
된다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그게 내 스타일인데.”
그러면서 또 킥킥 웃는다. 엄마와 딸이 합작하여 자신들의 약점을 수용하라고 강요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201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