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권의 영혼의창-가장높은 곳
2014.01.06상세 본문
가장 높은 곳
캐나다 로키산맥에 갔을 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성큼성큼 뛰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사슴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절벽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사슴을 보며 떠올린 말씀은 시편 18편 33절에서 한 다윗의 고백이었습니다.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소서.”
절벽 낮은 곳에는 사슴을 위협하는 사나운 짐승들이 다니곤 했지만 높은 곳에 올라
간 사슴은 그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었
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그 사슴처럼 가장 높은 곳을 다니길 원했습니다. 사람에게 있
어서 가장 높은 곳은 어떤 곳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사단이 참소하지 못하고, 택한
자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못하고, 위협하지 못하는 가장 높은
곳은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일까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가장 높은 곳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셨
다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어떤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줄까요. 예수님
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가장 높은 곳으로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이 그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의 뒷부분을 헬라어 원어에 근접하게 해석하면 “우리가 의롭게 되었기 때문
에 부활하시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입은 자로 변
모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
서 우리들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하
나님의 의를 입고, 그리스도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가 되었음
을 기쁨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중요한 측면입니다.
주님이 가장 높은 곳으로 부활하심으로 인해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가장 높은 곳
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입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
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
을 보실 때 드러나는 죄들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흠 없는 어린양 예
수처럼 아무 흠 없는 존재로 보십니다. 그의 아들로 보십니다.
우리의 어떠한 죄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이
유는 드러나는 죄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기
억하지 않으시며 예수님처럼 의롭게 우리를 보살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11
절이 살아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
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사단의 속임수와 참소의 정중앙은 이처럼 우리의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 두
영역입니다. 우리의 죄가 다 사해지지 않았다고 속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하다고 속입니다. 루터가 오랜 정죄의 종교생활을 깨고 종교개혁을 이룬 바탕이
바로 자신이 종교권력자들을 통해 사단의 속임을 당해온 이 두 영역이었습니다.
까마귀 떼가 독수리를 맴돌며 시야를 가리고 귀찮게 할 때 독수리는 까마귀와 논쟁
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으로 비상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의를 입게
된 성도들도 가장 높은 곳으로 비상하며 뱀을 오히려 먹이 삼는 권능의 자녀임을 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