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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엄마 믿어줘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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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믿어줘/ 홍순복

 

현관문에 열쇠를 끼워 돌리는데 그린이 안에서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그린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 왜? 엄마 기다리고 있었어?'

" 응, 빨리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또 무슨 부탁할일이 생겨서 그러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고 했다. 오늘 혼자 집에

오다 공원을 지나치는 데 자기 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마리화나를 피우더라고 했다.

여자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나는 놀라며 그 아이들이 담배를 피운 거겠지, 라며 아

이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마리화나냄새였다고 했다. 나는 가

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나만 갔다는데 어떻게 그것이 마리화나였나를 감

지 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워 그린에게 내 눈을 한참 고정시켰다.

" 네가 어떻게 알아 그 냄새를 ?"

" 알지."

 나는 순간 요것이 아무래도 경험이 있어 이렇게 말하나 싶어 들고 섰던 도시락 가

방과 백을 거실 구석으로 던져 버리고 그린을 끌고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그린은

실실 웃기만 했다. 또 늑대소년처럼 장난으로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건지 이젠 속지

말아야지 하며 아이를 다그쳤다. 딸은 어릴 적부터 기관지가 나빠 먼지 나는 곳은

피해야 했다. 동네 아줌마가 담배를 피우면 멀리 피해서 가기도 하며 왜 저 나쁜 것

을 피워대는 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심지어 집에서 커피라도 끊이면 코를 막고 자기

에겐 역겹다 하던 아이다.

" 엄마, 컴다운. 엄마 뜸뜰 때 그 냄새 같아. 똑같이 말린 풀이잖아. 근데 마리화나

냄새는 좋아."

냄새에 예민한 아이가 어찌 그 냄새는 거부감 없이 좋아, 라고 반복을 하는지 모르

겠다. 올 초에 우리 부부는 뜸을 배워서 서로 해주고 있는데 가끔 손놀림이 야무진

그린이 우리 두 사람에게 뜸을 떠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쑥 타는 냄새를 알고 있다.

 나는 그린에게 물었다. 너희 학교는 얼바인에서 제일 좋은 하이스클이라는데 마리

화나를 피는 학생도 있냐고 했더니, 엄마는 참 순진하다는 듯 내 등을 톡톡 두드리

며 윙크를 했다. 안전한 곳은 아무 곳도 없다고 했다. 엘에이 다운타운 학교나 얼바

인 학교 어디나 마약 딜러가 있다고 했다.

" 엄마, 걱정 마 나는 돈을 좋아하니까 돈 주고 살 일이 없을 거야. 히히히, 엄마도

들었잖아 나 돌 잔치때 세 번이나 돈만 집었다는 것. 아이 러브 머니. 헤헤헤."

진짜 그린은 얄밉게 자기 돈은 엄청 챙긴다. 어쩌다 1.2불을 빌려도 잊지 않고 받아

내며 심지어 몇 십전 까지도 계산한다.

" 야, 너 정말 치사하게 이렇게 챙길 거야? "

" 헤헤 엄마아빠 돈은 다 내 돈이고 내 돈은 내 돈이야."

그린이 내게 조크로 한다지만 가끔은 괜히 섭섭한 생각이 든다. 이다음에 늙어서 저

것한테 용돈 타기는 글렀네, 하면 옆에서 남편은 아니야 나는 쟤네집 앞에 가서 돈

달라고 소리소리 지를 거야, 했다. 나는 치사하게 뭘 그래요 우리 건강하게 살면 밥

이야 먹겠지. 바라긴 뭘 바랍니까? 하면서도 딸아이가 이다음에 제 앞가림은 제법

잘 하겠단 안도감도 든다.

"그런데 샤니는 마리화나를 피워봤데."

" 뭐야? 그 쪼그만 게? 큰일이네."

샤니는 아침이면 그린과 함께 걸어서 등교하는 친구이다.

" 모든 마리화나는 처음엔 공짜야. 그래야 나중에 팔 수 있으니까."

그린이 그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모르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밥하기도

싫을 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진짜 마리화나를 해봤다면 내게 숨겼을 텐데 이렇게 다

드러내며 이야기 하는 것으로 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제

는 아이를 감시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 배고파 밥해줘. 뭐 맛있는 것 좀 해봐?"

" 지금 밥이 문제야? 너 혹시 누가 피워보라고 공짜로 주면 어떡할 거야?"

" 아이참, 내가 그러겠어?"

하며 나를 껴안았다. 그리곤 등을 또 살살 두드리며 걱정 많은 Miss Worry, 라고 나

를 불렀다.

나는 잠자리에 들 기전 남편에게 그린의 이야기를 했다. 설마 그린이 그러지 않겠

지? 누가 꼬인다고 넘어가고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십대

아이들은 믿을 수 없대요.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다 내 자식은 아니라

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은 딸을 믿고 기도하

며 잘 보살피자고 했다.

아침이 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마리화나 냄새는 좋아, 라는 그린의 말이 들리는 듯

했다. 그린의 방으로 간 나는 자고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 너 어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 잠 좀 자자 엄마."

그린은 짜증을 냈다. 내가 너무 과민했나 보았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하루 종일 그

린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내가 샤워를 하려고 하자 딸은 제가 먼저 한다며 새치기를

했다. 겉옷을 막 벗는 순간이었다. 금방 목욕탕으로 들어간 그린이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짜잔, 하고 내 앞에 섰다. 벗은 몸이었다. 두 젖 가슴위에 눈썹을 그리고 양 가슴사이엔 코를 그려 넣고 배꼽은 입술로 그려 놓았다. 그리

고 춤을 추며 그 옛날 추송웅 처럼 모노드라마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믿어줘, 나는 착한 딸이야, 오, 그래, 그린아."

그린이 저 혼자 말하고 내 대답도 목소리를 변성시켜 자기가 했다. 말을 할 때 마다

배꼽의 입술이 정말 사람입술처럼 움직이는 꼴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나를 포복

절도 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벗은 내 가슴위에 아이라이너로 눈썹을 재빠르게 그

렸다.

저런 아이를 아직은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2011-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