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권의 영혼의창-자격의 문제
2014.01.07상세 본문
자격의 문제
주님의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근심이 하나 있습
니다. 그건 자신의 ‘자격’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예수님이 손을 펴시고 함께 가자고
하시는데도 우리는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 만큼 올바른지를 놓고 불안해합니다. 예
수님이 아브라함의 모든 축복을 부어주시고자 가까이 오셨는데도 우리는 그 축복에
합당한 상태가 아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나거나 눈물 나는 예배
에 흠뻑 젖어 나오면 조금 더 자격을 갖추었다고 여기고, 연이어 죄를 지으면 축복
의 자격에서 다시 조금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내 영적이고 종교적
인 상태에 따라 요동치는 지극히 불안정한 것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내려온 중풍병자도 이런 자격지심으로 고
민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모세로부터 내려오는 구약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중풍
병자는 완전히 자격미달 상태였습니다. “죄로 가득 차 있고, 세상에서도 버림받고,
공중장소에도 자유롭게 나서지 못하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치유를 바라며 예수라는
사람에게 나아간단 말인가”라고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의 병을 그냥 고쳐주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
니다. 왜냐하면 치유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중풍병
자를 통해 드러나기 위해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
은 바로 죄사함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참 너의 죄가 많구나”라고 하지 않
으셨습니다. 우리 죄가 많다고 지적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전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모든 죄가 스크린에 다 나타난다면 세
상 모든 사람은 놀라 우리를 떠나게 될 것이지만 예수님만은 놀라지 않고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그런 참혹한 범법자임을 이미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풍병
자가 아직 죄인인 상태일 때, 그리고 아직 회개도 하지 않은 상태일 때 예수님께서
다가가시어 던지신 첫 말씀은 “네 죄가 모두 용서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망가져버린 이 세상에 주님의 온전한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죄사함의 전제조건이 먼저 필요했기 때문에 예수님 스스로가 십자가의 죽
음과 부활로 그 전제조건을 대신 만족시키시고 믿는 우리들을 수혜자로, 상속자로
지목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잃
어버린 바 된 동전처럼 절망의 상태에서 울부짖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
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일부분을 돕는 은혜가
아니라 이처럼 100퍼센트 완전한 은혜입니다. 주께서 요청하시고 주께서 그 요청을
스스로 만족시키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유일한 자격입니다. 내가 무엇을 좀 더 한
다고 은혜의 풍성하심을 보탤 수 없고, 내가 무엇을 더 못한다고 은혜의 풍성하심이
줄어들거나 소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 상태에 따라 불안정하게 요동
치거나 춤추지 않고, 언제나 동일하게 풍성하심을 부어주십니다. 이 은혜를 맛본 사
람은 안식의 매트를 들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죄 사함이
무엇에 따라 된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우리의 상태입니까. 우리가 이룩하는 자격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풍성하심을 따라 된 것입니다. 축복의 근거를 주님은
우리의 자격에서 결코 찾지 않으십니다.
내 삶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을 주님이
만족시키시고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자격에 두기를 바랍니다. 그 자격은 결코 변
질되거나 요동치지 않으며 어둠 같은 절망 상태에서도 우리를 새벽빛처럼 일으켜
세우는 확실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