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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카운트 다운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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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 홍순복

 

 미들스쿨 졸업 파티가 교회 교육관에서 열렸다. 금요일은 회사일이 바쁘기에 나는

언니에게 부탁하여 감자가 들어간 과일샐러드를 가져갔다.

 교육관에 도착하자 몇몇의 학부형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묻지도 않은 두 아들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주 금요일 성경공부에 아이들을

보냈는데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이젠 집회 때마다 참석해 신앙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모임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도

전이 되어 그린에게도 금요 성경공부에 참석해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보에 유스그룹을 위한 카운트다운 광고가 실렸다. 교회에서 돌아온 남편이 그린

이를 등록했다고 말했다. 그런 집회가 있을 때마다 그린은 불참의 이유를 달았다. 중

등부전도사님이 분명히 광고를 했을 터인데 제 아빠나 내가 말하기 전에는 모르는

척 시침을 뗀다. 몸과 머리가 자라면서 신앙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남편은 아이를 너무 닦달하지 말고 기다려보자는 식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영혼이 맑은 어린 시절에 신앙의 뿌리가 심겨지면 일생동안 기쁜 삶을 살

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린이를 그런 아이로 만들고 싶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의 집회 첫날이 되었다. 첫날은 목요일 저녁 8시에 시작이 되어

두세시간 만에 끝나지만 둘째 날부터는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점심과 저녁까지 제

공하며 온종일 강행군을 한다. 나는 그린이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아이가 좋아하는

Chick-Fil-A에서 저녁을 사 먹인 후 교회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면 라디오 켜라는 말

이 자동으로 나오던 그린의 입이 한 발이나 튀어나와 있다. 왜 이렇게 일찍 가느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보다 못해 한 마디 쏘았다.

" 어찌 그리 입이 길게 나왔냐. 예수님을 좋아하고 사랑해봐라, 얼마나 좋은데."

" 피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지저스를 왜 사랑해."

" 뭐라고 기도했는데?"

" 오늘 교회에 안 가게 해달라고."

" 그런 기도를 하니까 안 들어주지!"

나는 그린의 능청에 화가 나서 손바닥으로 등짝을 철썩 치며 말했다.

 파킹랏에 들어서니 본관 유리문 너머로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그

린은 너무 일찍 왔다며 차에 있겠다는 걸 데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하이스클 여학생

들이 등록을 받고 있었다. 명찰을 만들기 위해 한 여학생이 이름을 묻자 그린은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파스텔 색에 카운트다운이라 쓴 티셔츠가 이번 집회의 유니

폼 이었다. 5불을 내고 하나 사서 그린에게 쥐어주며 갈아입으라고 했더니 됐어, 하

며 나에게 가지 말고 교회에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엄마들도 교회에 아이들을 내려놓고 모두 돌아간다고 하며 집으

로 온 나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10시가 되어서 교회로 출발했다. 교회에

도착해보니 아직 집회가 끝나지 않았는지 나처럼 아이들 픽업을 온 엄마 아빠들이

차를 주차한 채 교회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집회가 끝

난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속에 그린이도 섞여 팔락거리며 뛰어왔다.

티셔츠로 갈아입고 입에는 캔디스틱을 물고 하이 엄마, 하며 아까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어땠니? 라고 물었다.

" 엄마, 마피아가이가 스피커였어. 그런데 너무 불쌍했어."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니 중국과 월남 혼혈이라고 했다. 광고지에서 본 삭발한 그 사

람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이만하면 첫날 수확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

다.

다음날 아침은 직장 때문에 언니가 데려다 주었다. 언니말로는 친한 친구가 있는지

그린이 내리자 어떤 아이가 두 팔을 벌리며 뛰어오더라고 했다.

 그날 밤 10시가 넘어 교회로 갔다. 그린이를 기다리다가 차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부르릉 거리는 차량들의 소음에 눈을 뜨니 아이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전화를

하자 그린이 차 쪽으로 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모습이 꽤 재미

가 있어 하는 듯 보였다. 그린은 차에 올라타는 즉시 오늘도 마피아가이 이야기를 했

다. 3학년 때 마리화나를 피웠고 5학년 때 양아버지와 포르노 필름을 보았다는 충격

적인 이야기를 했다. 마피아에 가입하여 무서운 일들을 저지르고 결국엔 감옥에 갔

다는 이야기. 그곳에서 누가 준 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선

교사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그의 아내는 지금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란다.

"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하는 거래. 그리고 어떤 언니가 랄랄라, 이상한 소리로 울면

서 내 뒤에서 기도했어. 내가 언더스탠 못하는 이상한 말이었어."

" 그게 하늘의 언어라는 거야. 우리 그린이도 이번 집회에 은혜 받아서 방언했으면

좋겠다."

그 말에 그린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집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마지막 토요일 저녁엔 밤 10시가 넘어서 교회에 갔지만 40분을 차속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집회가 끝나서 아이들이 몰려나오는데 그린이만 보이지 않았다. 목을 길게

빼고 넘겨다보니 유리문 안쪽에 그린이 보였다. 그린과 함께 친구 서너 명이 둘러서

서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전화로 불러낼까 하다 끝까

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빨리 가는 것

만을 좋아하던 아이가 꼬박 3일을 교회에서 살았는데도 불평 없이 즐거워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늘 나를 골탕 먹이던 아이다. 왜 지저

스만 믿어야 하는지, 세계사를 배우다보니 불교가 더 좋은 것 같다, 모슬렘도 좋

고……..하며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본인 밴드도 와서 찬양을 불렀다고 했다. 그룹으로 모여 다른 나라를 위해 기도했

는데 자기 팀이 2등을 했다고 했다. 어떤 오빠와 언니는 울면서 기도하더라고 했다.

나는 그린에게 그건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도중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 이야기를 했다.(읽으라고 책을

그린에게 준지가 1년이 넘었다. 고전이라 재미없다며 아직 읽지 않았다.) 주인공 장

발장이 배고파서 훔쳐 먹은 빵 때문에 감옥에 간 이야기. 돈을 벌어 많은 사람들을

도와줬고 시장도 된 이야기. 그리고 불쌍한 코제트를 딸로 키워준 이야기. 마지막 장

면은 장발장 아버지가 코제트를 향해 유언으로 한 말.

[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라.]

그 말을 하니 그린은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운트다운 집회가 끝난 뒤의 어느 날 그린이 자기 친구에게 인터넷을 통해 음악 소

개하는 말을 들었다.

' ABOVE ALL' 마이클 스미스의 노래였다. 오래전 내가 너무도 즐겨 부르던 곡이었

다. 그 감흥이 저 멀리서 되살아오는 듯 했다. 딸아이도 내가 받았던 감동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린은 그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십자가 고통당하사 버림받고 외면 당하셨네.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

네. 나의 주님………..-

 

201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