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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행복한 만남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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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남 / 용우

 

 월요일 아침, 직장에서 한국어라디오방송을 듣고 있는데 놀라운 뉴스가 흘러나왔

다. 남 가주 한인교회 중 가장 규모가 큰 영락교회의 새 담임목사에 얼바인온누리교

회의 권 혁빈 목사가 내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뜬금없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

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들은 뉴스를 전했다. 놀라기는 아내 역시 마찬

가지였다.

-어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글세 말이야, 믿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러나 공중파방송에서 아침 뉴스로 나왔으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니야?

 서로 근무시간인지라 저녁에 집에서 만나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내와의 통화는 그

정도로 끝냈다. 허지만 그 날 하루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영락교회 같은 대형교회가 매스컴에 발표할 때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지

난주일 예배를 인도한 이 상준 청년본부장이 ‘권 혁빈 목사님이 저에게 설교를 맡기

고 갑자기 서울로 가셨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연초 담당목사 이취임 예배에서 ‘권

목사님은 서울에서도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청빙 일 순위의 훌륭한 목사님’ 이라고

하던 이 재훈 목사님의 말도 떠올랐다. 실제 많은 교인들이 권 목사님의 영성 깊은

설교와 목회열정에 깊은 감동과 감화를 받고 있다. 새 신자들의 증가가 눈에 띄게 늘

어나는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영락교회가 아니라 더 큰 교회로 청빙되어간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저녁에 귀가하여 신문을 펴니 거기에도 기사가 실려 있었다. 미주판 1면에 환하게

웃는 권 목사님의 사진과 함께 ‘영락교회 당회는 청빙위원회가 추천한 권혁빈 목사

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고 쓰여 있었다. 덧붙여 ‘20여명의 후보 목사를 두고 설교

와 성품, 목회비전, 성서적 복음적 리더십을 검증한 끝에 권혁빈 목사를 청빙하게 됐

다며, 제직회의 최종 청빙절차를 거친 뒤 본인의 수락을 받아 청빙을 마무리하게 된

다’ 고 했다. 기사 내용으로 보아 아직 청빙의 최종절차가 끝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본인의 수락이 없는 상태였다.

-여보, 권 목사님이 정말 그 교회로 가실까?-

나의 심각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눅은 목소리로 물었다.

-양자 간에 어떤 언질이나 교감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방송과 신문에 공고를 하겠

어, 어느 목사님이나 더 큰 곳에서 자신의 비전을 펼치고 싶은 것이 꿈이니까. 그리

고 온누리교회 목사님들은 어차피 정해진 임기를 마치면 떠나게 되어 있잖아. 권 목

사님이 조금 일찍 떠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

-어쩌나, 교회가 난리가 날 탠데.-

-이것도 신앙의 길에 겪는 일종의 고난 아니겠어. 문제가 생기면 기본으로 돌아가라

는 말 알지? 오직 예수, 우리 성도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는 거야.-

-글세,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가슴이 아프다.-

아내는 못내 아쉬운 얼굴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속이 편한 건 아니었

다. 취임 첫 설교에서, 일어서라!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얼바인으로 왔다며, 예배

당 안에서 받은 평화와 위로를 누리는 데에 그치지 말고 그 힘으로 힘차게 세상으로

뛰어나가 복음을 전하자, 며 떨리는 음성으로 선포하던 말씀이 생각났다. 어느 주일

엔가 설교를 마친 목사님의 제안으로 온 교인이 일어나 ‘너 근심걱정 말아라’ 라는 찬

송을 부르며 가슴이 울컥했던 일도 떠올랐다. 온 교인과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이

렇게 살지 않겠다’ 고 다짐하던 가슴 뜨거움도 생생히 느껴왔다. ‘행복한 만남’ 의 날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시다가 우리 부부에게 손수 따끈한 차를 부어주시

던 장면도 스쳐갔다.

 나는 신문위로 얼굴을 내렸다. 박스기사 속의 권 목사님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

는 사진을 향해 혼자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지금 웃으실 때가 아닙니다.’

 지난 해 7월 서울에서 개최된 ‘디아스포라 선교대회’로 출타하신 박종길 목사님을

대신해 임시로 강단을 맡으시다가 지난 1월부터는 정식으로 부임하신 권 목사님을

교우들은 물론 우리 부부 역시 많이 좋아하고 있다.

 권 목사님의 해박한 성경지식은 풍부한 상식 위에 그것을 풀어내는 유려한 언변과

낱말 선택의 고급함으로 하여, 마치 대학 강의실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승시켜준다. 더구나 그 밑바닥에 활활 타고 있는 신앙의 불덩이는

모든 성도들을 태울 듯이 뜨겁다.

권 목사님은 언제나 처음 은혜 받은 사람처럼 신앙의 기합이 빳빳이 들어 있다. 가까

이 가면 베일 것 같은 결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정하고 바르다. 나팔소리 나면 당장이

라도 진군할 장수처럼 단단히 무장되어 있다. 그런 장수를 따르지 않을 병사가 있을

까.

수요일저녁, 그렇잖아도 궁금하던 차에 순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집사님, 우리 목사님 문제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어요. 권 목사님이 방금 전 수요

예배시간에 강단에 올라오셔서 영락교회로 가지 않겠다고 당신이 직접 선언하셨습

니다.-

손 집사님은 승전보라도 전하듯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가 시끄러운 것으로

보아 교회주차장에서 곧바로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그거 정말 대단한 결정인대요, 어떻게 그런 용단을 내리셨을까? 저는 권 목

사님이 우리교회를 떠나실 거라는 쪽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렇지요, 대게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있었겠지요. 어느 목사님인들 대형교회로의

청빙을 마다하겠습니까, 더구나 영락교회는 미주한인사회의 대표적인 교회잖아요,

기실 권 목사님도 팔십 퍼센트는 그쪽으로 기울었었다고 솔직히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돌아와 이곳의 상황을 보니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사모님과 함께 하룻밤을 기도했대요, 결국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떠

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답을 얻어 그 자리에 섰다고 하셨습니다. 교우님

들이 걱정스러웠는지 평소보다 훨씬 많이 참석했는데, 목사님의 진솔한 고백을 듣고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였습니다.-

들뜬 목소리로 상황을 전하는 손 집사님의 설명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덥히기에 충

분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내 속의 그것은 목

사님이 잠시 기울였던 80퍼센트를 뺀 나머지 20퍼센트에도 미달하는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권 목사님은 예상을 뒤집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그런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목사님으로서 당연히 내릴 수 있는 결정이겠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한 방향으로 실행하지 않음으로 하여 슬픔과 실망과 분

노를 생산한다.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통해 문제를 보라, 는 경구를 실천한 권

목사님이 자랑스럽다. 삭막한 세상에 감동의 꽃 한 송이를 헌상한 목사님이 존경스

럽다. 오늘 이겨낸 승리의 열매는 권 목사님 일생의 신앙자존심에 마르지 않는 에너

지를 공급하리라.

10월에 들어서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 가을의 어느 아침에 따끈한 차 한 잔 얻어 마시러 목사님 방문 앞

을 기웃거려 볼까.

 

201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