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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쏘나타를 사다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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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를 사다 / 이 용우

 

 어느 날 내 차에 동승했던 친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게 뭐야? 이십칠만 오천육백마일? 오 마이 갓!”

나는 친구가 무엇에 놀라 그러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핸들을 잡은 채로 힐끗 쳐

다보았다. 친구는 내 차의 계기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허 웃었다.

“이 차 겉은 멀쩡한데 마일리지가 이렇게 높았어? 년 식이 몇 년도야? 이십칠만 마일

이라니, 나 이렇게 많이 뛴 차는 생전 처음 보네, 허허허.”

친구가 연해 허허거리고 웃음을 터뜨려서 나는 공연히 무안해졌다.

“난 또 뭐라고, 그까짓 마일리지 높은 게 무슨 상관이야, 차만 잘 굴러가면 됐지. 아

직 쌩쌩하다고, 앞으로 이 삼 년은 너끈히 굴러갈 탠데 조금 참았다가 삼십만 마일

넘어서거든 놀라지 그래.”

 말은 호기롭게 했지만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마일리지 높은 차를 타

고 다니며 은근한 걱정을 깔고 있다. 주 6일, 하루 백마일 이상을 주행하는 장거리 직

장으로 인해 항상 안전운전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2년 전에 아내가 적금을 들었다. 목적은 바로 내 차를 바꿔주겠다는 거였다. 그 적금

을 지난 7월에 탔다. 그런데 적금을 받아 들고 마음이 바뀌었다. 크레딧카드 빚이 너

무 쌓였으니 이자 나가는 것부터 청산하자, 그런 말이었다. 차가 별 문제없이 잘 굴

러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 계산을 가능케 했다.

 적금을 크레딧카드 빚 청산에 써버리고 나니 이제는 정말 고물 차가 잘 굴러주기만

을 바라며 더욱 운전에 조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정말 이십

칠만 마일 넘은 차가 아무 문제가 없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걱정스러

운 일이었다.

 때때로 계기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경고 등이 빨갛게 켜지는가 하면, 엔진오일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말라버리기 일쑤였다. 노후차량이라 당연히 그런 것이겠지

만, 60 마일 이상 속력이 올라가면 차체가 심하게 떨리고 소리가 요란했다. 항상 트

렁크에 여분의 엔진오일과 쿨런트를 넣고 다녔다. 점심식사 후엔 으레 보닛을 열어

놓고 차 속을 살피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친구와 만난 날 저녁에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아내도 내가 노후 된 차로 출퇴

근하는 일이 늘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먼 길을 다니는데 자동차까지 시원찮아서야

되겠느냐, 페이먼트가 많더라도 이 참에 노다운으로 새 차를 뽑자고 했다. 쉽게 나온

아내의 그 제안으로 해서 새 차를 사는 일이 급물살을 탔다. 운전하는 사람과 지켜보

는 사람 둘 다 차에 대한 걱정을 깔고 사느니 차라리 속 시원하게 차를 바꾸자고 단

박 결론을 지었다.

 차종에 대해서는 이미 2년 전 적금을 들 때 현대 소나타로 정해두었기에 따로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너무 싱거워서 ‘새로 나온 제네시스가 중후하고 멋있던

데…’ 하고 슬쩍 운을 띄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일언지하에 싹둑 잘랐다.

“다운페이도 한 푼 없는 주제에 무슨 제네시스야, 꿈도 꾸지 말아요!”

“흐흐흐, 쏘나타만 해도 내겐 할아버지지, 그냥 해본 소리라구.”

그렇게 해서 당장 이튿날로 쏘나타를 뽑았다. 다음 날, 차콜 색 날렵한 쏘나타를 몰

고 직장으로 향하는 내 기분은 견줄 데 없이 만만했다.

 사실 그 동안 나는 모국 차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할까, 아니면 어떤 죄의식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연원은 ‘엑셀’ 이라는 소형 현대차가 이 미국 땅에 상륙했

던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 시절의 어느 날, 현대라는 이름을 달고 거리를

달리는 국산 자동차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한 느낌으로 살아있

다.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엑셀 자동차의 운전석에는 중년의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앉

아 있었는데, 그녀가 존경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혼다 시빅에 앉아 있던 나는 부끄

러웠다.

 그 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났건만 나는 여전히 국산 차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혼다

시빅을 시작으로 올스모빌, 포드, 볼보, 토요다로 차종을 바꾸어가며 힐끗힐끗 현대

와 기아차를 바라보기만 했다. 리세일 벨류가 적다는 말에, 에프터 서비스가 안 좋다

는 주위의 의견에 밀려 어물어물 외국 차로 결정해버리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도로

를 질주하는 한국 자동차를 힐긋거리고, 운전석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지 궁금해

서 목을 빼고 살피기 일쑤였다.

 다른 자동차가 과속을 하거나 위험하게 차선변경을 하면 인상을 쓰다가도, 현대나

기아마크가 보이면 얼른 속도를 늦추며 주행을 도왔다.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네,

들어오세요, 앞에 가시라고요.’ 하는 말과 함께 수신호를 보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나는 국산 자동차를 타지 못하는데 대한 잠재적 콤플렉스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이

제 그런 나름의 죄의식에서 벗어나 떳떳(?)하고 충만한 자신감으로 거리를 달리게

되었다.

 이미 두 주일 전에 차량국으로부터 새 차에 부착할 번호판이 도착해 있다. 하지만

나는 번호판을 아직 달지 않았다. 한국산 새 차에 대한 느낌을 좀 더 즐기기 위해서

이다.

 

201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