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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천당길,매니큐어

2014.01.19

상세 본문

천당길,매니큐어/이용우

 

 조문객들이 빠져나간 채플은 적막이 감돌았다. 아들, 딸, 며느리와 사위, 손자손녀,

그리고 증손들까지 관 앞에 둘러선 모두는 고인에 대한 느낌대로 제 각각 회한에 잠

긴 모습이었다. 그렇게 짧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자 더러는 소리 죽여 흐느끼기도 하

고, 누군가는 슬픔을 참느라 침 삼키는 소리를 거칠게 내기도 했다.

나는 열린 관의 발치께로 조심스레 다가가 유심히 넘겨다보았다. 연분홍 재킷에 새

하얀 속옷을 받쳐 입은 장모님은 투병하실 때보다 더 고운 모습으로 편안히 누워 있

었다. 잔 구슬이 가득 박힌 은색브로치가 재킷의 앞섶을 예쁘게 여미고 있었다. 경험

많은 사람이 했는지 얼굴화장도 낯설지 않고 생전의 모습처럼 자연스러웠다. 부기가

빠진 두 손은 가지런히 앞으로 모아 허리 위에 포개어 있다.

 그런데 무심히 보고 있자니 서로 포개어 얹은 두 손의 손가락 끝이 유난히 반짝거렸

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이 아니라 손톱이 빛나고 있었다. 손톱이 코팅을 한 것처럼

매끄럽게 윤이 나며 빛을 반사했다. 무색이 아니라 밝은 아이보리 색을 띠고 있다.

바로 매니큐어를 칠한 것이었다. 나는 곁에 선 아내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여보, 어머니가 생전에 매니큐어 하셨나?-

아내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숨죽인 음성으로 아니, 했다. 나는 또

작은 소리로 얼른 말했다.

-저기 봐, 어머니 매니큐어 하셨어.-

 내 말에 아내도 포갠 손끝에 시선을 주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한 번은 리무진을 탄다더니 우리 장모님은 매니큐어까지 칠해보시네, 라는 생각에

웃음이 날 뻔했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매니큐어로 반짝이는 손톱 하나를 얼른

만져보았다. 매끄러웠다. 그때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만지지 마.-

 왜 만지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이유를 따질 상황이 아니어서 나는

그만 손을 거두어들였다. 멋쩍게 뒤로 물러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기실 나는 그

때 손톱을 만져본 다음에 고인의 손등까지 쓸어볼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상대

의 손을 끌어 당신의 볼에 부비며 체온을 나누던, 고인만의 독특한 사랑표현 도구였

던 손, 그 주름진 사랑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인이 세상을 뜨기 열흘 전쯤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세 식구가 병문안을 가서 침상

주위에 둘러앉았다. 기력이 소진한 장모님은 그 트레이드마크 같은 손 키스도 하지

못하고 그저 벙그레 웃기만 하셨다. 그러다가 불쑥 말했다.

“천당…”

장모님은 이미 얼마 전부터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요단어만

툭 던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그것을 잘 아는 아내가 얼른 말을 받았다.

“응? 뭐, 엄마 천당 간다고?”

그러자 장모님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 했다. 그러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장모님이 원하는 말들을 줄줄 쏟아냈다.

“그럼, 엄마 천당 가면 아버지도 만나고, 큰언니도 만나고… 또 목사 외삼촌도 만나

고…” 하며 장모님의 머릿속에 있는 이름들을 주~욱 열거했다. 아내의 입에서 나오

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 장모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입원하던 날부터 집으로 가자고 보채던 장모님이셨다. 에어컨바람이 심하게 쏟아지

는 병원, 천정에 달린 커튼을 휙 둘러치면 꼭 막혀버리는 병실을 싫어하셨다. 허지만

소원대로 집에 와보았자 이내 응급상황 발생으로 입원을 되풀이해야 했다. 거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장모님이 엠블런스에 실려 나가고 들어오는 일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다. 아마도 장모님은 그런 일을 겪으며 간절히 돌아가고자 원하던 당신의 집이

결코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이제 입원도 없고 퇴원도

없는 본향, 저 높은 하늘 집으로 가시겠다는 담대한 작정을 하셨나 보았다.

장모님은 그날로부터 열흘 남짓, 발병한지 3개월여 만에 한 잠 잘 주무신 새벽아침,

편안한 얼굴로 떠나셨다. 연분홍 화사한 재킷에 반짝반짝 은색브로치 달고, 그리운

이들 기다리는 천당으로 아이보리색 매니큐어 곱게 칠하고 떠나가셨다.

 

201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