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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창-도장과 끈, 지팡이

2014.01.20

상세 본문

도장과 끈, 지팡이

 

인간은 먼지 정도의 의식영역과 우주 정도의 무의식으로 이뤄져 있음을 높은 산에 오를 때마다 깨닫습니다. 산

꼭대기 굴러가는 불과 돌멩이 하나에 내 의식이 갇히는 순간 나는 그것을 제외한 거의 무한대의 무의식에 소스

라칩니다.

나는 이래서 옳게 행했고, 나는 저래서 옳지 않게 행했다는 얄팍한 내 의식 속 선악의 기준에 따라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돌아보는 순간 나는 우주만한 내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의 에너지원에 따라

출렁대고 있는 또다른 나의 검은 실체의 심연을 목도합니다. 그 어마어마한 무의식의 공간에는 아담의 피를 타

고 유산처럼 흘러온 죄가 폭과 키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출렁대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창기 같은 욕망

들이 탈선한 열차처럼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무한회전하고 있음을 영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의식영역에서 온전히 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영역에서의 악함에 곧장

삼켜져버리고 맙니다.

내 영혼은 길바닥에 뒹구는 먼지처럼 주소를 잃고 방황하다가 구원의 절박성에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악으로 가

득 차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무의식의 심연을 인간이 되어 만져본 그 어떤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의 영역까지도 흠하나 없는 깨끗한 신이 자신의 의로움을 주어 인간을 구원하지 않고서는 인

간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음을 깨닫고 그 구원자를 기다립니다.

이런 생각은 타인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사실은 그 사람의 본질을 보고 있

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투사된 본인의 시선임을 깨닫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거나 평가를 하거나 하는 것들이

결국은 내가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려서 올라오는 자기중심적 인식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

간 어떤 심각한 도덕적 파괴에 갇힌 타인에게라도 나의 인식의 화살을 거두게 되고 역시 구원자를 부르짖게 됩

니다.

이러한 무한대의 절망적 상황에 놓인 인간에게 누가 다가오셨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오셨습니다. 그 구

원은 인간의 영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의 다리는 하나님의 영역으로부터 건설된 것이며 그 구원

의 다리를 건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로 찾아오시어 우리가 발산하고 있는 자기구원의 자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을 심어주셨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 영혼을 찢고

들어온 하나님의 의로움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신이라고까지 불러주시게 되었습니다.

의로움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차디크>인데, 이 단어는 창세기 38장에서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쓴 말입니

다. 시아버지인 유다를 속여 창녀인척 행음을 하고 다말은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유다에게서 받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유다는 배가 불러오는 며느리 다말을 부정하다는 이유로 불사르라고

명령을 하지만 그때 다말은 유다에게 담보물로 받았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여줍니다. 도장과 끈과 지팡이는

그 사람의 모든 권위와 약속을 뜻하며 다말은 그 징표들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징표들을 본 유다는 다말을 가리

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히브리어로는 <민 차디크>라는 구절로 ‘다말은 나보다 의롭다’라

는 뜻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더욱 넘치는 은혜가 아닙니까.

다말은 유다가 준 징표를 받아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스스로에게서 흘러온 어떠한 의로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징표 때문에 다말은 불사름 당함을 면할 뿐만 아니라 ‘유다보다 의롭다’라는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간직하게 된 의로움도 똑같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아무리 출렁대도 그것 때문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주님이 심어주신 의로움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출렁대는

의식과 무의식에서 사단이 군대를 총동원한 듯 정죄와 죄의식을 가지고 공격할 때 그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자

랑스럽게 꺼내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너는 나보다 의롭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로마서의 표현에서 죄는 명사입니다. 동사가 아닙니다.

동사처럼 출렁이는 심연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죄와 상관없는 자들이 되었고, 명사처럼

단단하고 변함없는 의로움의 반석 위에서 춤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도장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살아납니다. 거대한 무의식마저 강권적으로 구원되었음에 감격합니다. 있는 그대

로를 사랑하심과 주권적 인도하심이 놀랍고, 이에 나는 일그러진 과거까지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타인의 존

재에 대해 판단보다 용납과 인정의 시선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절박한 상태인지, 그리고 구원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들이 되시길 바랍니

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