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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국민체조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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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조 / 용우

 

 아내가 배드민턴을 치다가 부상을 입었다. 배드민턴은 축구나 농구처럼 몸이 부딪치는 운동도 아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공을 주고받는 신사놀음이다. 그런데 어떻게 부상을 당했을까. 알고 보니 간

단했다. 공치는 재미에 빠져서 너무 무리를 한 거다. 더구나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어 팔을 내둘렀

다니 몸이 배겨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른쪽 목 밑으로 어깨를 거쳐 팔뚝까지 아프다고 했다. 퇴근시간이 늦은 나를 기다리다 못해 언니네 집에 가서

부황을 떴지만 통증이 여전하다며 뜸을 떠달라고 어깨를 내밀었다. 검붉은 부황자국이 대여섯 군데나 찍혀있었

다. 어쩔 수없이 부황자리 위에다 쑥뜸을 떴다. 어깨에도 뜨고, 팔에도 떴다. 같은 자리에 거푸 여러 번을 떴다.

그렇지만 쑥뜸도 별 효용이 없는지 아내는 여전히 신음을 쏟아내었다. 언 듯 오래 전에 사놓은 바이오마사지기

계가 생각나서 그것까지 가져다가 이리저리 문질러 보았다. 처음에는 통증이 완화 되는 것 같다고 하더니 조금

지나자 그것 역시 별무소용이었다.

-아이고, 아파. 손 집사님이 아침에 일 나가려면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귓등으로 들었지 뭐야. 에고, 팔이

떨어져나가는 거 같이 아프네, 아무래도 내일 병원에 가야 할까봐. 아유, 이렇게 아파서 어떻게 살아, 으흐흐흐.-

-집사님이 말할 때 그만하지 뭐 한다고 몸이 이렇게 되도록 공을 쳐, 이 미련한 사람아.-

-미숙 집사가 시합하자고 해서 그랬어, 시합하니까 재미있잖아, 그래서 자꾸 쳤지.-

-아니, 미숙 집사님은 달련 된 몸이지만 당신은 이제 시작한 초보자잖아, 자기 몸은 자신이 컨트롤 해야지. 나이

가 몇 살인데 그렇게 몸을 마구 놀려. –

-뭐야, 내 나이가 어때서? 아직은 쌩쌩하다고, 쌩쌩해.-

-어이구, 퍽도 쌩쌩하네. 그래서 이렇게 됐나?-

-시끄러, 어쨌든 이제 나 아무것도 못해, 당신이 알아서 밥 해먹고, 빨래하고 그래. 에구구, 아파죽겠다.-

통증 때문에 아내는 밤 내 잠도 못 자고 징징거렸다.

 아내가 배드민턴을 치게 된 것은 그린이 때문이었다. 그린이 키도 커졌지만 몸집도 불어나서 우리 내외는 그 문

제로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컴퓨터 하는 시간도 너무 많아서 이래저래 운동을 시켜야 그 두 가지

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는 탁구를 생각했다. 아내는 중고등학교시절 탁구를 즐겼고, 포장을 뜯지 않은 탁구배트도 두 개나 가지

고 있었다. 마침 같은 순원 인 손 집사님 네가 탁구대를 가지고 있어서 그 집에서 두어 번 게임을 했다. 그런데 아

내가 탁구를 정기적인 운동으로 삼으려는데 반해, 손 집사님 네는 따로 하는 운동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배드민

턴이다. B교회 체육관에서 매 주 화, 목, 토 3일 간 모여 친목과 운동을 겸하는 배드민턴 동호회였다. 아내는 손

집사님 네의 권유로 그린과 함께 그 클럽에 가입하여 배드민턴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기 시작한지

서너 번 만에 부상을 입었다.

 알람이 울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잠을 설쳤지만, 그래도 어쨌든 일어나야 하기에 서로 에구에구,

비명을 쏟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한 쪽 어깨와 팔에 부상을 입은 아내는 등과 엉덩이를 움직여 어렵사리 침대를

벗어났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신음소리를 연신 쏟아냈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스웨터를 입히고 성한 팔을 부축

하여 부엌으로 내려왔다.

 -저 주스기 내리고, 당근 씻어서 꼭지 잘라요. 냉장고에서 양배추 꺼내고 딸기와 블랙베리도 씻고, 사과 깎아서

자르고…-

오트밀 끓일 물을 오븐에 얹으며 아내는 잠 묻은 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오른 손잡이가 오른쪽 팔을 다쳤으니 그

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해보지 않던 일을 한꺼번에 시키니 나는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순서가 잡히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고 들여다보니 각종 용기와 비닐봉지 따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양배추가 어디 있는

지, 딸기가 어느 곳에 묻혔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우선 눈에 띄는 블랙베리를 꺼내 씻으려니 아내가 한심하다

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건 오트밀 먹을 때 필요한 거니까 조금 있다가 씻고, 지금 당근주스부터 만들어야 하니까 양배추를 먼저 가져

와야지.-

-양배추가 어디에 있는데?-

-어디에 있긴, 냉장고 안에 있지 어디에 있어.-

-그래? 냉장고속에 안보이던데.-

-안보이기는… 아래 칸 김치 병 뒤에 보면 있다고요. 아이고, 아파.-

당연히 아파서 그렇겠지만 아내는 오만 상을 찡그리며 짜증을 내었다. 얼른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아내가 말

한 아래 칸의 김치 병 뒤를 살펴보니 비닐봉지에 싸인 양배추가 숨어 있었다. 비닐봉지에서 꺼낸 양배추를 씻으

려고 싱크대로 가져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러자 아내가 조금 전보다 더욱 큰 소리로 힐난을 했다.

-여봇, 그건 안 씻어도 돼! 그냥 주스기에 들어갈 만하게 뚝뚝 잘라주기만 하면 된다구. 아이고, 답답해. 이리 줘

요, 내가 할게. 아흐흐흐, 아파, 아파…-

내가 하는 짓이 깝깝했던지 아내는 양배추덩이를 잡으려고 팔을 뻗다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터뜨렸다.

-여보, 알았어, 씻지 않고 그냥 잘라만 줄게. 내가 몰라서 그러니까 말을 하라고, 말을.-

 나는 참지 못하고 그만 언성을 높였다. 아내는 미안했던지 당근을 주서기에 집어넣으며 얼굴을 돌렸다. 웨엥~

하고 주스기가 돌아가자 부끄럽고 어색한 기운이 기계음에 묻혀버렸다.

 경황없이 아침을 먹은 우리는 8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아내 회사의 지정병원인 미숀비에호의 카이저 병

원으로 향했다. 나를 아래층 로비에서 버려둔 채 이 층 진료실로 올라간 아내는 한 시간여 만에 약봉지를 들고 내

려왔다. 병원 구내약국에서 지은 항생제와 진통제라고 했다.그런데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먹은 아내는 상태가

좋아지기는커녕, 가슴까지 답답하다며 괴로워했다. 나는 약이 독해서 그러나 하고 의심해보았지만 정확한 이유

는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이웃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했다. 큰처형은 당장 침통을 들고 달려오더니, 아내의 열손가

락을 전부 땄다. 그러자 아내는 이제 살겠다며 긴 숨을 내쉬었다. 약이 독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체했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꼭 그 짝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이었다. 아래층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이상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한낫, 둘, 셋, 넷! 둘, 둘, 셋 넷! 뒤로 돌아~아~ 한낫,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앞으로~’

음악에 구령이 붙어있었다.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음악이라는 것이. 나는 바삐 위층으로 올라가 보

았다. 컴퓨터 앞에 등을 보인 아내가 두 팔과 다리를 벌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하던 ‘국민체조’ 였다. 까마득히 잊었던 그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다시 배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 부상을

입었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오른쪽 팔은 엉거주춤하게 들려지고 있다.아내는 그 국민체조를 매드

민턴 치기 전의 준비운동으로 이용할 셈인가 보았다. 그래서라도 부상을 입지만 않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12.06.02